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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강제병합 전후 일본 여성 기독교인의 한국 인식

        가미야마 미나코(神山 美奈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6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 No.45

        본 논문은 한국 강제병합기(1894년 청일전쟁부터 1919년 3.1 독립운동 시기까지를 중심으로)에 있어서의 일본의 여성 그리스도인, 그 중에서도 이 시기에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여성 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던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1886년 설립. 이하, 교풍회)와 일본 YWCA(1905년 설립. 이하, YWCA)에 소속된 여성들의 한국 인식을 고찰하였다. 특히 양 단체의 기관지, 즉 교풍회가 발행한 『도쿄부인교풍잡지』(이후 『부인신보』)와 YWCA가 발행한 메이지의 여자 (이후 수차례 개명 후 현재는 『YWCA』)에 게재된 한국 인식의 내용을 고찰함으로써, 한일 기독교사에 있어서의 여성 그리스도인을 통한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고, 두 단체에 있어서의 당시 기독교 이해 및 선교 이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청일·러일 전쟁 시기에는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는 일본’으로서의 모습을 연출하는데 일본의 기독교 여성들도 지원 활동을 전개했지만, 한국 강제병합기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교풍회와 YWCA 모두가 공통되게 일본의 식민지하에 놓인 한국의 상황을 그대로 긍정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1919년의 3.1독립운동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발생한 ‘소요사건’이라는 이해에 머물면서도, 한국인에 대해서 동정과 유감의 뜻을 나타내며 정치적 상황과 기독교 신앙과의 관계 가운데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교풍회가 YMCA보다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에 더욱 적극적인 협력의 태도를 보인다. 결국, 당시의 일본의 여성 그리스도인들은, 일본의 국책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피동적으로 휩쓸려 가면서, 남성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스스로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못하고, 기독교 신앙과 일본의 제국주의의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망국조선’을 영적으로 각성시켜 구원의 길로 이끄는 손길로서의 선교 활동이 자진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믿으며 그 역할을 잘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한국인을 향한 동정이나 한국인 차별에 대한 반성을 재촉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식민지 지배 자체에 대한 비판적 견해나 고뇌, 갈등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근저에는 뿌리 깊이 존재하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우월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한국인에 대한 동정 심리나 반성적인 기사의 내용들도 그러한 우월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 KCI등재

        한국 강제병합 전후 일본 여성 기독교인의 한국 인식: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와 일본YWCA를 중심으로

        가미야마 미나코 한국기독교역사학회 2016 한국기독교와 역사 Vol.- No.45

        . 본 논문은 한국 강제병합기(1894년 청일전쟁부터 1919년 3.1 독립운동 시기까지를 중심으로)에 있어서의 일본의 여성 그리스도인, 그 중에서도 이 시기에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여성 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던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1886년 설립. 이하, 교풍회)와 일본 YWCA(1905년 설립. 이하, YWCA)에 소속된 여성들의 한국 인식을 고찰하였다. 특히 양 단체의 기관지, 즉 교풍회가 발행한 「도쿄부인교풍잡지」(이후 「부인신보」)와 YWCA가 발행한 「메이지의 여자」(이후 수차례 개명 후 현재는 「YWCA」)에 게재된 한국 인식의 내용을 고찰함으로써, 한일 기독교사에 있어서의 여성 그리스도인을 통한 새로운 관점을 확보하고, 두 단체에 있어서의 당시 기독교 이해 및 선교 이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청일·러일 전쟁 시기에는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는 일본’으로서의 모습을 연출하는데 일본의 기독교 여성들도 지원 활동을 전개했지만, 한국 강제병합기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교풍회와 YWCA 모두가 공통되게 일본의 식민지하에 놓인 한국의 상황을 그대로 긍정하며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1919년의 3.1독립운동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발생한 ‘소요사건’이라는 이해에 머물면서도, 한국인에 대해서 동정과 유감의 뜻을 나타내며 정치적 상황과 기독교 신앙과의 관계 가운데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교풍회가 YMCA보다 일본의 식민지화 정책에 더욱 적극적인 협력의 태도를 보인다. 결국, 당시의 일본의 여성 그리스도인들은, 일본의 국책이라는 거대한 물결에 피동적으로 휩쓸려 가면서, 남성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스스로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못하고, 기독교 신앙과 일본의 제국주의의 양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망국조선’을 영적으로 각성시켜 구원의 길로 이끄는 손길로서의 선교 활동이 자진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믿으며 그 역할을 잘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한국인을 향한 동정이나 한국인 차별에 대한 반성을 재촉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식민지 지배 자체에 대한 비판적 견해나 고뇌, 갈등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근저에는 뿌리 깊이 존재하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우월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한국인에 대한 동정 심리나 반성적인 기사의 내용들도 그러한 우월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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