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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무영(Pyeon Moo-Yeong) 비교민속학회 2005 비교민속학 Vol.0 No.29
Through Hegel's dialectical logic, Yul-Gok’s ideologicalphilosophy (a 16th Century Korean Confucianist), and the theory of ‘The Time and the Space’ I will examine the reciprocal relation between the region and the whole. In other words, I will present a logical establishment that the scholars’focus should be on the dialectical relationship between parts and whole because “region should not be understood in local,” that region can only exist through its relationship with the whole. Furthermore, this is a methodology that can be proven individually through individual research, as I am proving through Buddha’s Festival in Asia, that all scholars should confront logical problems via their own case study.
片茂永 동아시아고대학회 2011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25
滿開한 연꽃에서 神이나 貴人, 또는 亡者가 상반신을 드러내며 출현하는 연화화생 모티브의 그림이나 부조, 벽화 등은 아시아의 전 지역에서 발견되는 글로벌 문화이다. 그러나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본다면 연화화생과 연엽화생은 구별해야 마땅한 용어였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의 연화화생 문화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통속적인 언설이 아니라, 연엽화생과 연화화생이 본래 인도에서는 어떠한 신화적 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을까 하는 중국불교 이전의 문제로 접근하려고 하였다. 먼저 일본의 불교장식이나 회화에서는 연엽화생과 연화화생에 대한 단계적 표현이 두드러졌는데, 가령 前者를 인간의 화생, 後者를 신의 화생으로 나누려는 의도가 읽혀졌다. 한국의 사찰 벽화에서도 연엽화생은 연화화생의 前段階라는 화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즉, 전자에서 극락에 도달한 망자가 후자에선 왕생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그 밖에도 한국과 중국의 민속에서는 연엽화생이 祈子信仰과 부부의 금실을 대표하는 도안으로 토착화하였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연엽화생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본다면 연엽이나 연꽃은 신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생명력의 원초적 형상화가 연잎이었으며 조물주가 최초로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낸 곳도 연못(lotus pond)이었다. 神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개별자 역시 연잎에서 비롯하였으니 연잎은 바야흐로 연꽃보다 한 발 앞선 생명력의 근원이었다. 연엽화생의 보편성과 상징성을 이상과 같이 일본에서 인도에 이르는 문화 전파의 루트를 따라 살펴보았다. 이 세상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던 단계에서는 연화화생이 화려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 부정할 수 없으나, 그 전 단계, 즉 최초의 생명력이 응집하던 단계야말로 연엽화생의 역할이었다. 즉, 연엽화생과 연화화생은 신화적 전개의 전후관계나 상하관계를 표상하는 단계적 장치였다. 연엽화생은 구체적 신들이 본격적으로 태어나기 전 단계, 다시 말해서 태초의 생명력 형성의 이야기였으며 우주에서의 개별자 형성, 즉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을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다. 연엽화생에 담긴 고대 인도의 신화적 사상이 중국을 경유하면서 형이상학에서 형이하학, 즉 속화(俗化)의 길을 걷기도 하지만 원의를 지금까지 남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상이 누락된 상태의 민속은 문화변이를 일으키면서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래되기도 하였다. 요컨대 하나로 존재하는 우주적 전체와 그곳을 출처로 무수한 개별자들이 탄생한다는 신화 이야기, 즉 고대 인도인들의 범아일여 사상은 연엽화생과 연화화생이라는 두 개념이 상호 불가분으로 존재하면서 성립할 수 있었다.
片茂永 동아시아고대학회 2017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46
본고는 연등불의 수기와 싯달타의 탄생, 그리고 출가에서 수행·득도·열반에이르는 전 생애를 통해 연화의 상징성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하여 연화의 상징적 의미가 淸淨無垢같은 통설로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니며, 그보다는聖과 俗, 혹은 극락과 지옥같이 다양한 상징성을 겸비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과거세의 授記에서 연등불은 선혜동자가 미래의 사바세계에서 붓다가 될 것이라 예견하는데, 이때의 계시는 연꽃 공양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연꽃은 연등불과 선혜동자, 즉 天界와 앞으로의 인간계를 이어주는 종교적 연결고리였다. 연꽃을 통한 연등불의 계시 이야기는 도솔천과 지상으로 무대가 옮겨지며 흰코끼리가 白蓮을 물고 마야부인의 꿈속에 나타나 수태가 된다는 전개로 이어진 다. 과거 수기의 기억은 白蓮에 각인되어 있었고, 그것이 마야부인의 수태를 가능케 하였으니 白蓮은 구체적인 붓다의 출현을 예고하는 상징이었다. 그런데 연꽃의 이와 같은 상징성은 실은 유라시아에 널리 퍼진 전승문화이므로 문화사적으로는 불교이전부터의 보편성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싯달타의탄생에서도 연꽃은 神聖을 상징하는 보편성을 보여주는데, 옆구리 탄생담과 연화화생 모티브도 함께 전하기 때문이다. 신성함의 표상인 연꽃의 의미는 싯달타의 출가에 이르도록 면면히 이어진다. 그러나 출가를 결행하는 직접적인 계기가되었던 싯달타의 정신적 고뇌에서는 연꽃의 의미가 俗華로 변하고 마는데 그 배경은 고대 인도의 신화나 문학 같은 문화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사바세계의 집착이나 애착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표상으로 연꽃이 등장하는사례를 인도 외의 유라시아에서 발견하기는 어렵다. 즉, 유라시아의 보편문화라기 보다는 불교 이전의 인도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와 같이 聖 俗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연꽃이 불교에 등장한 것인데, 이후의 전개에서 연꽃은다시 신성함을 줄곧 나타내지만 득도 후의 붓다에 이르면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聖俗의 양면성이 이질적인 두 문화의 습합이라면, 이제부터는 유라시아의 보편성도 아니며 불교 이전도 아닌 붓다만의 세계에서 연꽃이 홀연히 존재하게 되는데, 극락과 지옥을 동전의 양면처럼 설명하는 붓다의 법문을 통해서였다. 극락은 연화화생, 지옥은 연화태생이 그것이다. 불교 이전의 브라만 사상을 넘어서려던 붓다의 사상적 끝자락에 위치한 궁극적 표상으로 연꽃이 있었다. 이곳은 성도 아니고 속도 아닌 차원이었으니 극락과 지옥은 하나의 정토라는 심오한 문제를 연꽃을 통해 범부들에 펼쳐보였던 것이다. 극락과 지옥이 궁극적으로 각각의 세계가 아니라면, 출가후의 수행자 시절싯달타가 아라라카라마 仙人에게 전수받았다는 無所有의 경지, 즉 想에서 해탈하라는 가르침이 연꽃에 투영되어 있던 것으로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석존의 생애에 나타난 연화의 상징성을 간추린다면,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聖과 俗, 대자대비, 극락, 지옥 등의 주요 개념들을 다양하게 상징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중요한 문제였다. 요컨대, 듣는 이에 따라 그에 맞는 話法 으로 自在로 달리 설명하는 석존의 소위 對機說法에서 연화는 요체였기에 다양한 상징이 가능하였다. 다시 말해서 연화는 그때그때 존재성을 달리해서 나타나는 化現이었기에 형태이자 형태가 아닐 수 있다는 철학적 난제를 다시 우리에게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Lotus flower is the universal symbol in the realm of Indian literature and art since vedic times, but it is the most indispensable symbol for religions, for example Hinduism, Buddhism, and Jainism etc. Therefore, in this paper, I will make more clear some meanings of Lotus flower cited by Buddha during his sermon. At first, I gave attention to the seven Lotus flowers showed in the prediction of God to coming Buddha, Gotama Siddhartha. In this prediction(Vyakarana), the seven Lotus flowers were core symbol and intermediate between God and coming Buddha. Therefore, I’d like to say it very meaningful memory to comning Buddha. Secondly, I paid attention to the period from the birth of Siddhartha to becoming a Buddhist monk, and came to know that Lotus symbol is so diverse that we can’t define the meaning of Lotus symbol as a purity like that has been understood in general. In a large sence, because we can seek Lotus symbol as a not only sacred-flower, but also vulgar-flower, it is a rather important problem for us to understand Buddha’s genuine thought. Thirdly, Lotus symbol would be focused to the point of enlightenment of Buddha and his sermon during about 45 years. In his sermon, we can also discover so many lotus flowers cited in Buddha’s preach itself, and also recognize meaning of Lotus becomes to be different in accordance to some situations from time to time. Why did Buddha himself say Lotus flower as a different meaning ? Moreover, from the fact that Buddha has ever given his sermon to the followers that Lotus flower as a symbol of Paradise, and Lotus bud as a symbol of Hell, we can not help but accept a philosophical and buddhist proposition, that is to say a Sunyata, meaning emptiness or nothingness. And to conclude, Lotus symbol on Buddha’s life is so varied according to the situations that we have to pay attention to many buddhist paintings or literature, and also to the true intention of Buddha’s sermon.
편무영 동아시아고대학회 2014 동아시아고대학 Vol.0 No.35
동아시아의 범주에 관한 학제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한국의 종교민속학에서는 이미 시급한 문제로 다가 왔다. 불교민속론의 발전적 모색을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의 불교민속에 국한된 연구를 지양하고 동남아시아나 서남 아시아의 불교민속을 포함한 총체적 국면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종교민속론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는 종 교민속연구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여기서는 동아시아고대학회 제현의 고견에 귀 기울이기로 하였다. 종교민속연구가 결코 한국에 국한된 종교민속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동아시아고대학회 역시 동아시아를 논 의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는 또 다른 언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아시아라는 광역의 문화 영역과 어떤 종교민속이 각각 날실과 씨실이 되어 만나는 접점을 연구의 시발점 으로 삼아야 함을 전제로 내세웠다. 지금까지의 비교 연구가 개별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제부 터는 가령 문양이나 세시풍속에서 발견되는 종교민속을 통해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하는 문화횡단에 도전해야 한다 . 그러기 위해 주목해야 하는 것이 종교민속학적 관점인데 이것은 종교민속 현상과 동아시아가 함께 만든 자수의 감상법과도 같은 것이다. 한편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의 다른 영역들처럼, 문화관련 영역에서도 동아시아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일단 아무도 의문부호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과학이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범주는 사회과학과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인문과학 내부에서조차 미묘한 차이가 있다. 편의적이고 통상적이라는 판단 기준은 학술적으로는 무책임하 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민속학의 특징에 비추어 볼 때, 한자와 중화를 축으로 생각하던 과거의 발상이 과연 지 금과 앞으로의 글로벌 시대에 부응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고려해야할 점은 또 있는데, 그것은 문화과학의 이론으로 중심과 주변의 주종관계가 아닌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 관 계로 봐야한다는 점이다. 역사 과학에서는 토인비가 “유기적인 전체”라 표현하였다. 전체와 부분에 의한 문화구조 는 그 어느 것도 중심일 수 없고 늘 주변일 수도 없다. 인도의 범아일여(梵我一如, Brahman-Atman-Aikya) 사상 에 수렴되는 이론이라 할 수도 있겠고, 현상학에서도 관련된 논저는 연구사의 중요한 줄기를 이룰 정도이다. 그와 같은 사상적 맥락에 입각했을 때 중국은 불교의 경유지이면서 재활성 지역이고 고구려 역시 경유지이자 재활성 지 역이라는 관계성에는 차이가 없다. 마찬가지로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리그베다 사 상이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타교가 재활성된 지역이므로 같은 흐름의 관계성은 연속해서 꼬리를 무는 식이다. 한 마디로 전체가 유기체적 관계라는 인식이 중요한데 그렇게 본다면 불교는 무에서 유로 창출되었다기 보다 불교이 전부터 거듭된 재활성의 도달점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무도 없고 유도 없다는 고대 인도의 원초적 사상 역시 그 렇게 사유되지 않았을까. 이와 같이 본다면 한자에 대한 확고부동한 가치 부여와 문화권 설정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래서 종교민속학에서는 동아시아를 아시아의 동부 지역이라는 본의로 되돌려놓고 종교민속 전반을 고찰하고자 한다. 거기서부터 종교와 어떤 민속과의 관계를 검증해야 하며, 불교는 물론이려니와 유교나 도교 가톨릭 개신교 공히 이러한 입장과 관점은 공유되어야 한다. 이상은 동아시아와 종교민속의 관계에 국한된 논술이지만 역사학이나 문학 또는 고고학이나 지리학 해양학 등 다 양한 연구 분야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동아시아고대학회는 각 분야가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범주가 무엇 인지 살펴본 연후에 학회로서의 총체적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While the existing research of topics associated with East Asiais not adequate, clarifying Korean folklore of religion has become an urgent task. For more understanding Buddhist folklore, we must examine Northeast Asia along with Southeast and West Asia. Similar to how research on religious folklore is not limited to Korea, the Association of East Asia Ancient Studies has conducted research in the field of East Asia. Conventional East Asian studies still retain the model of seperate fields of study with respect to East Asia. Now, we must cross-culturally conduct research on one specific cultural phenomenon. For this reason, this paper discusses the necessity to investigate some folkloristic phenomena employing the perspective of East Asia. On the other hand, there is no doubt that cultural studies must consider East Asia Studies, similar to the social science and humanities disciplines. The range of perspective used in East Asian Studies. however, is not integrated with the social sciences. Subtle variations can be found even within humanities. Criteria of judgment, that are convenient and ordinary, continue to be used without significant academic responsibility.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 question arises whether previously effective Sino-centered thought continues to be relevant in the global era. Another aspect needs to be considered. Cultural structures must be perceived as an organic relation between the whole and the parts, and not as examples of master-servant relations between the center and the periphery. Arnold J. Toynbee also described it as an organic whole. Nothing can be a center or a periphery in the cultural studies, as they are composed of wholes and their parts. This theory converges with the Indian philosophy of Brahman-Atman-Aikya. Phenomenological arguments also account for an important part of the theory. In this intellectual context, China can be perceived as a stopover and a revitalizing region, and Koguryo as well. Likewise, though India is known as the birthplace of Buddhism, India also revitalized the Rigveda and Zoroastrianism of Persia. These relationships are impermanent. In other words, it is important to see the whole as an organic link. Buddhism emerges from a combination of the constant revitalizations that occured before its arrival and its own new beginings, instead of simply emerging out of nothingness. I think the ancient Indian philosophy stating that there is no nothingness or being was also conceived in a similar manner. Therefore, we must reconsider Sino-centric thinking. It is necessary to redefine East Asia as the eastern part of Asia and take religious folklore into consideration. From that point of view, we must verify a relation between religion and folklore. Additionally, this viewpoint has to be shared with not only Buddhism, but also Confucianism, Daoism, and Christianity. These are the feature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ast Asia and religious folklore. However, it is necessary to consider diverse fields such as history, literature, archaeology, geography, oceanography, and so on. For these reasons, the Association of East Asia Ancient Studies should declare a perspective as an academic conference, after reviewing a range of East Asian Studies in other areas of research.
불교민속의 이중구조론 -싯다르타 탄생담의 옆구리 모티브를 사례로-
편무영 실천민속학회 2023 실천민속학연구 Vol.42 No.-
본고는 불교[聖]와 민속[俗]의 합체로 이루어진 불교민속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출발하였다. 즉, 성속의 이중구조는 외관상 엘리아데가 제시하는 성과 속의 관계성에 닮았으나 내면으로는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엘리아데의 성속의 이중구조가 이원론을 전제하는데 비해 불교민속은 일원론과 이원론 양면성을 띠고 있다는 점을 논증했다. 논증을 위해서는 범어 빨리어 한역 경전의 삼자 비교, 그리고 한역 경전과 속강이나 비람강생상의 벽화 이야기 비교, 마지막으로 일본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객관성을 높이려 하였다. 경전과 속강, 그리고 벽화로 이어지는 하나의 분석대상은 싯다르타 탄생담의 옆구리 모티브였다. 여기서 범어 빨리어 경전이 전하는 옆구리는 비일상적 일상으로 불교 이전부터 전하는 은유법의 상징이었다. 무엇을 은유하기 위한 상징 언어인가는 불교의 가르침인 인연에 귀결되는 문제였다. 인연은 곧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연속성의 진리 이야기로써 석가모니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연[聖]을 설하기 위한 옆구리는 대기설법을 위한 방편[俗]이었기에 외견상으로는 성속의 이중구조이나 본질에서는 일원론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과 같은 진리 이야기에 대한 이해가 지속 가능했던 것은 결코 아니며, 용수의 『대지도론』이나 『불본행집경』을 정점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요컨대 옆구리 태생이 인연을 설법하기 위한 은유법이라는 핵심을 놓치는 경우 옆구리 탄생담은 허황한 이야기에 불과하였다. 은유가 사라진 옆구리 탄생 이야기는 이원론적 성속의 이중구조로 남게 된다. 법문에서 벗어난 우스갯소리로 변질되는 것이다. 일원론 이원론을 오가게 된 배경이며 이것은 거의 그대로 한국불교에도 옮겨졌으므로 비람강생상이나 관련 불교설화에도 흔적을 남기었다. 그러나 매우 드물지만 팔공산 동화사는 과거세 현세 미래세로 이어지는 인연설에 근거한 비람강생상을 전하고 있어서 성속의 일원론적 이중구조를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민속학에서는 일원론 이원론을 오가는 성속의 이중구조에서 다채로운 문화의 생성을 체험하게 되므로 동화사와 구별되는 비람강생상도 분석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성속의 이중구조를 이원론에서 해석하는 비람강생상은 민중의 관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에 여전히 소홀히 할 수 없다. 불교학적 관점과 민속학적 관점의 균형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즉, 일원론 이원론의 분기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기설법이 석가모니의 가르침[聖]을 쉽게 설법하기 위한 은유적 방편으로 기능하는지, 아니면 신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방편[俗]으로 기능하는지는 성속의 이중구조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일원론 이원론의 거리감은 시대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도 발견되었으므로 비교불교민속론의 과제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한마디로 불교민속은 엘리아데의 성속론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중구조를 고찰해야 하는 특수한 문화구조이다. 그래서 이중구조의 일원론 이원론을 가르는 대기설법은 적재적소일 때 유효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법문에서 벗어난다는 점을 불교민속학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상의 이중구조론을 통해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불교민속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과 더불어 비교불교민속론에 대한 실천적 과제로 좁혀지...
편무영 중앙대학교 한국문화유산연구소(구 중앙대학교 한국민속학연구소) 2006 중앙민속학 Vol.- No.11
민의 정체를 밝히는 일은 곧 민속학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고, 동시에 민속학을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이며, 또 문자들을 관통한 다음 되돌아와야 할 원점이다. 民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民의 존재를 바르게 인식해야하는 것이 순서이며, 民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民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한 개념, 즉 非民을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그런데 이 양자는 서로가 상대방을 전제로 하는 대립관계이면서 의미심장한 모순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리고 서로가 협력하면서 ‘俗’을 만들어 나가는 그러한 귀결을 본다. 民의 실재를 둘러싼 범주를 통해 부분과 전체에 관해 살펴보아야 하며, 부분개념[民]에 고정돼 왔던 민속학적 사유를 다양성의 통합개념[民非民]으로 전환함으로써 전개되는 민속학의 새로운 지평을 입중해보이기 위해서 민의 실재를 밝히는 것은 중요한 장을 열어가는 것이다. In the field of folklore, it is significant to define the concept of people It is also helpful to understand “non-people” in order to clarify the definition of “people”. Both “people” and “non-people” in a sense that not belonging the mass are not separable but co-related elements. Hence in making proper “mass tradition” both “people” and non-people how to cooperate each other.
불교민속의 이중구조 재론 -석가모니 열반이야기의 다비(茶毘) 모티프를 사례로-
편무영 실천민속학회 2024 실천민속학연구 Vol.44 No.-
본고는 석가모니의 열반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며칠 동안의 다비에 주목하였다. 불교민속이 갖는 성속의 이중구조를 재차 분석하여 이전의 연구에서 밝히지 못한 변증법적 전승 양태의 실태를 드러내려는 것이 목적이다. 먼저 범어 빨리어 본에서 다비를 살펴보니 인도의 신화와 불교 사이에서 경전이 만들어졌음이 재차 확인되었다. 그러나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는 중국의 문화와 불교 사이에서 한역 경론이 만들어졌기에 중국의 문화가 다수 섞이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인도 불교를 잘 설명하기 위한 대기설법의 일환으로 부득이하게 선택한 중국적 은유법이었다. 이를 두고 중국 양 나라 때의 승우는 성언과 속설로 설명하였으며 승우의 견해를 잘 이해한 조선시대의 석보상절 편집자들은 감로와 허언으로 바꿔 표현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속설과 허언이 무엇을 은유하려던 방편인지 오해나 망각하는 경우가 발생하였고 이것은 이중구조를 구성하는 성과 속이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이었다. 석가모니의 시신을 올려놓았던 평상[牀]이 구(柩)나 관(棺) 곽(槨) 여(輿)로 점차 바뀌는가 하면 본래 없던 관에서 두 발이 밖으로 나온다거나 관이 허공을 난다는 식의 과장된 속설이 속속 만들어졌다. 한국 불교는 중국의 이러한 속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고 작금에 전해지는 속강이나 팔상도 이야기가 이를 입증한다. 한편으로는 효(孝)를 중심으로 몇 가지 한국적 이야기가 엿보이는가 하면 감로와 허언에 주의하는 팔상도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전승 과정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어서 교리적 본질을 지키려는 속강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석가모니의 죽음을 십이지의 동물들이 알리러 간다거나 마야부인의 하강을 새가 방해하고 약봉지를 허공에서 던지는 등 민담에 버금가는 그림 설법 또한 전하는 실정이다. 여기서 불교민속학은 이러한 속설과 허언에만 주목하기 보다는 성언과의 본질 문제에 입각하여 성속의 이중구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불교민속 자체보다는 전승양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속의 전승양태는 일원론 이원론의 양면 구조라는 점과 더욱 발전하여 변증법적으로 전승됨으로써 발생하는 제3의 문화에 주목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요컨대 성과 속의 변증법적 전승양태를 더욱 심도 있게 밝혀나가는 연구야말로 불교민속학 앞에 놓인 우선 과제의 하나일 것으로 판단된다. This paper focuses on the cremation aspect of the story of Buddha’s Nirvana. Its purpose is to re-analyze the dual structure of sacred and secular elements in Buddhist folklore and reveal the dialectical transmission patterns that have not been addressed in previous studies. First, by examining cremation in the Sanskrit and Pali scriptures, it was confirmed that these scriptures were created at the intersection of Indian mythology and Buddhism. However, as Buddhism spread to China, the scriptures were translated into Chinese, integrating Chinese cultural elements. The primary reason for this was the use of Chinese metaphors to make Indian Buddhism more comprehensible to Chinese audiences. In response, Sengyou (僧祐, 445~518), a monk in early medieval China, explained it in sacred and secular terms, which the editors of Seokbosangjeol (釋譜詳節, 1447), well aware of Sengyou’s views, paraphrased as nectar and falsehood. However, over time, misunderstandings occurred as to what the secular and false words were intended to express, and this is the background to the separated development of the sacred and secular dualism. The bed on which Buddha’s corpse was placed was turned into a coffin or hearse, and popular myths were created such as two legs coming out of the coffin, which should not have been there, or the coffin flying in the sky. Korean Buddhism was not free from these Chinese popular beliefs, which are supported by the sermons and palsangdo (Buddhist paintings of the eight great events) handed down to the present day. On the other hand, Korean stories centred on filial duty can be found, as well as palsangdo cautioning against nectar and falsehoods. Japan is no exception to such traditions. While there are sermons that are strict in their doctrinal essence, there are also pictures and sermons passed down, such as birds obstructing the descent of Maya, animals informing of Buddha’s nirvana, etc. Rather than focusing on such popular beliefs and falsehoods, Buddhist folklore should have focused on the dual structure of the sacred and secular based on the essence of the sacred word. This is because the core of the problem lies in the mode of transmission rather than in Buddhist folklore. However, it is also necessary here to focus on the two-sided structure of monism and dualism and the third culture that arises from the dialectical transmission of the tradition. In essence, research to clarify the dialectical nature of sacred and secular traditions is one of the priorities of Buddhist folklore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