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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칼빈주의 이후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대한 G. Vos의 영향과 그의 신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홍거성 安養大學校 神學大學院 2005 국내석사

        RANK : 248831

        최근 100년 동안 신약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였다. 신약학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기 위한 핵심 텍스트를 4복음서로 인식하고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 즉 그 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분의 생애와 가르침, 그리고 그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주로 '영역'이나 '통치'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져 왔고, 그 성격상 윤리적 변화냐, 역사적 사건이냐, 아니면 실존적 이해냐, 또는 시간상으로 현재냐 미래냐 혹은 무시간적이냐 등으로 거듭 논의되어 왔다. G. Vos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성격에서, 특히 시간성에 대한 논의에서 분명한 틀을 제공하게 되었다. 보스 이전까지의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에 대해 어느 한 면만을 강조하던 것과는 달리 그 양면성을 주장하였으며, 어떻게 성경적으로 그것이 가능한가를 본문주해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그는 충실한 본문 주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구조를 밝혀내었고,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 나라의 양면성, 즉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니’(not yet)의 틀을 세우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적어도 하나님 나라의 시간성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는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 대한 보스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보스가 하나님 나라의 구조를 세울 수 있었던 그의 신학 전반을 살펴보았다. 그의 신학은 성경신학 방법으로 그 핵심은 '역사적 접근 방법'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성경을 접근하고, 그 역사 안에는 하나의 핵심, 즉 특별계시의 역사(구속사)의 흐름이 있으며, 그 구속사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가 태초부터 있었고, 그것이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풍성하게 발전되면서 인간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이럴 때에 계시의 역사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보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의 중심점을 볼 뿐만 아니라, 역사의 중심점, 심지어는 목적까지도 발견하고 있다. 이처럼 보스의 성경신학의 핵심은 계시의 유기적 점진성을 역사 안에서 파악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들이 주는 실제적인 유용성은 성경 본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생동감 있게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역사성을 통한 실제적인 유용성은 한계를 갖고 있는데, 바로 그 역사 안에 제한되는 그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역사적 개혁주의 교리의 준거들을 통해서 분명히 밝혀졌다. 칼빈, 어거스틴과 교부들, 그리고 개혁교회 내에서의 신앙고백서들을 살피는 방식으로 말미암아 언약의 통일성이라는 개혁주의 독특성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성경을 총체적으로 보는 교의학적 방식이었고, 이를 통해 개혁주의라는 말 자체가 교의학적인 틀을 의미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작업으로 말미암아 필자는 보스의 신학방법의 한계를 파악하게 되었고, 교의학적인 신학방법의 정당성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스의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살피고 그것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 후, 개혁주의적인 시각에서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상의 논의 과정을 통해서 현재 넓은 의미에서 개혁주의나 복음주의 안에서 이해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개념을 이끌어 내는 신학방법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스를 통해서 살펴보았다. 현재 보스가 이해하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한 이해를 가진 자들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그 이해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으며, 그들의 신학방법은 성경이 목적하고 있는 핵심을 올바르게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신학적인 방법이 아닌 교의학적인 틀을 가지고 성경 전체를 사려할 때, 성경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할 때, 현대의 이처럼 오해된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그 신학 방법은 개혁주의의 신학을 통해서 다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비단 하나님 나라의 개념뿐만 아니라 다른 신학적 주제들도 성경신학적 방법이 아닌 교의학적인 방법으로 다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연구

        김우길 경성대학교 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8831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ingdom of God and churches can be summarized into two subjects. The first subject asks whether God's nation and churches are identical entities each other, and the second one raises question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if those two are different entities each other. To begin with its conclusion, the Bible does not see the Kingdom of God and churches as identical entities. The Kingdom of God means God's sovereign ruling and churches are God's people under God's governing. The Kingdom of God comes through God's sovereign redemption work accomplished and completed in Jesus Christ and it includes essential elements of the Kingdom of God - the blessing of redemption power. While, church is those people who have God's blessing of the Kingdom of God, having been chosen and called by God. Therefore, church is the people of the Kingdom of God but not the Kingdom of God itself. That is, the Kingdom of God comes under God's governing, in which we can experience the blessing of God's ruling. While, Church is meeting places for those who experience the blessing of God's sovereignty. Therefore, church will be established among those people where God's sovereignty is proclaimed. In this sense, church is the results of the Kingdom of God that is realized through Jesus Christ. The Kingdom of God has duplicity as present existence and as future accomplishment. Jesus Christs' character as a human being and his works not only show present existence of the Kingdom of God but also testify that the Kingdom of God will be the last nation to be completed in the future in the end. God himself is looking for its people among whom its sovereignty is realized. Israelites used to be God's people in the time of Old Testament. But their rejection of the Messiah, Jesus Christ, replaced them with new people led by his disciples as its people. And churches were established among the new people and in this sense, churches bear continuity with Old Testament as new Israeli. Churches are, therefore, neither new concept nor the results of the faith of churches life afterwards. The concept of church comes under God's sovereignty and is already implicated in the proclamation of the Kingdom of God. Church is to testify and proclaim the Kingdom of God by receiving God's power and blessing.

      • 하나님의 나라 비유 연구 : 마태복음 13장을 중심으로

        김장섭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 2004 국내석사

        RANK : 248831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일까? 성도들이 소망하고 사모하는 그 나라는 과연 어떤 곳일까? 예수는 비유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천국의 비밀들을 가르쳐 주셨다. 실상(實像)적으로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은 예수가 상징(비유)적으로 가르쳐 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를 더욱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천국에 대한 많은 비유중에서 마태복음 13장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예수가 왜 비유로 말씀해 주셨으며, 그 나라는 과연 어떤 곳인가를 알게 되어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먼저 마태복음의 구조를 보면은 크게 3가지의 견해중에서 피터 엘리스(Peter Ellis)의 ‘교차 대칭 구조(Chiasm)’를 보면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강조가 13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13장이 ‘반지의 보석’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가 비유의 방법을 통해서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기에 비유(Parable)에 대하여 알아보면은 예수는 말씀을 가르쳐 주실때에 ⅓이상을 비유의 방법으로 가르쳐 주셨으며, 신약 성경에 50번이나 사용한 것을 보면은 비유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비유(Parable)라는 것은 언어의 표현방법중의 하나로써, 사물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나 연상이 되도록 사용하는 방법인 것이다. 실제로 보면은 예수는 우리 주위에 흔히 있는 농사에 관련된 ‘씨’나 ‘가라지’나 ‘밭’등을 사용하시고, 또한 고기잡이에 관련된 ‘그물’의 비유들을 사용하신 것이다. 또한 일상 생활인 빵 만드데에 사용이 되는 ‘누룩’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 사람이 귀중이 여기는 ‘보물’이나 ‘보화’등의 도구들을 사용하셔서 우리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별다른 것이 아니기에 거부감이 없어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예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것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즉 영적인 귀가 있는 자는 받아서 넉넉하게 되는 것이지만, 들을 귀가 없는 자는 받지 못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비밀을 아는 자는 무한한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마태복음에서 마태는 ‘말쿠스(תוּכꗡꖨ)’와 ‘바실레이아(βασιλεα)’대신에 ‘말쿠스 샤마임(םꖹꗫꚂ תוּכꗡꖨ)’과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βασιλεα τώγ οὐρανώγ)’을 더 사용하였다. 이것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는 것을 조심하여서 대신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이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으로 ‘주의 나라’로 때로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나 ‘아버지의 나라’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진 이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르낙(Harnack)은 비종말론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반면에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철저한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예레미아스(Jeremias) ‘실현과정에 있는 종말론(Eschatology in the Process of Realization)’을 제안하는 등 각기 다양한 견해를 말하고 있지만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면이 많아서 정확한 정의는 아닌 것이다.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왕(王)이 되신 곳이며,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권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의 통치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피조물(被造物)을 그의 화해 사역을 통해 그의 복된 지배 아래로 이끌림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는 내세(來世)에 오는 것이지만, 지금 현재에도 하나님의 간섭을 받는 다면 이곳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누리는 천국은 저 천국에서 누리는 천국생활과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지금도 천국 생활을 누릴 수가 있으며,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간섭과 다스림을 받는 곳은 그 어디나 천국인 것이다. 이 ‘천국’에 대하여서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를 통하여서 다양하게 말해 주고 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는 ‘씨’가 바로 말씀인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의 심령의 밭에 뿌리를 내릴때에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서 열매를 맺는 다면은 지금 이곳에서도 천국의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가리지의 비유’에 있어서는 천국은 가라지와 같은 행위의 요소가 있으면은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추수할 때에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서 불사르기 위해서 따로 보관을 하는 것이다. 즉 천국은 가라지같은 옛사람 중심의 요소들은 결코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요소들은 세상에서 뽑고, 잘라내어야 하는 것을 말해준다. ‘그물 비유’도 마찬가지로 그물안에 좋은 물고기, 나쁜 물고기가 다 섞여 있지만 나쁜 물고기는 내어버리는 것과 같이 천국 생활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다 제하여 버림을 알 수가 있다. 이 두 비유들은 현재에는 혼합되어 있지만 장래에는 그것들이 분리가 되고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겨자씨 비유’에서는 겨자씨가 작지만은 생명력을 가진 것을 말해준다. 복음의 씨앗이 작지만은 그 씨가 심령속에 와서 뿌리를 박고 열매를 맺으면은 많은 새들이 와서 여기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누룩 비유’의 ‘누룩’처럼 가루속에 적은 양이지만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복음의 역사는 그 심령을 변화시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자씨가 외적으로 풍성해지는 것을 말해 준다면은, 누룩은 내적으로 풍성해지는 것을 말해준다. 천국의 시작은 미약해 보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화’와 ‘진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진리를 소유하기 위해서 보화를 우연히 발견할 수가 있고, 때로는 진주를 사기 위해서는 각고(覺苦)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보화나 진주를 만났으면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바쳐서라도 이 보화와 진주를 사는 것이다. 만날을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천국’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언제나 주와 동행하게 되고, 천국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들이 연약하여서 천국 생활을 할 때도 있고, 못할때도 있지만은 내세(來世)에는 영원히 천국에서 살수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천국 생활을 연습하는 연습장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천국 생활의 기쁨을 누린 만큼, 그 나라를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 나라를 사모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더욱 그 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며, 이 생활보다는 저 생활이 더 영광스럽기에 저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 주예수 모신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 하나님나라의 이미와 아직

        신지숙 광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8831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하나님 나라의 시대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현대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과 내세에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게 한다. 하나님나라의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들을 살펴보고 성경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과 삶의 관점을 정하고 생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구성되어진 집단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함은 하나님에게 속한 나라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이는 하나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택하신 자들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이를 성경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어휘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또한 가르치셨다. 예수의 가르침에서 가장 특정적인 주제들 중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개념이 매우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이것으로 무엇을 뜻하셨는가, 그리고 이것이 그의 청중들에게 무엇을 전달하였는가를 주의 깊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성경 안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세상의 인간 역사와의 갈등 속에서 변천 되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사상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각 학자들의 하나님 나라의 시대성에 대한 주장이 하나님 나라의 시대성을 온전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난 뒤의 주장인지를 검토하며, 교회로 하여금 확실한 하나님 나라의 시대성을 이해하여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와 미래에 동시에 존재하며 완성 되어감을 이 논문을 말하고자 한다.

      • 하나님 나라와 선교

        김창년 영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8831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수평적인 복음의 차원을 중시하여 인간화가 선교의 중심 내용이요. 사회에 하나님의 샬롬을 구현함을 선교의 내용으로 하며, 또한 전도는 사회구조를 변혁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신학에서는 사회 복음을 주장하며, 이를 통한 개인 구원과 또한 사회 변화를 강조한다. 사회적 책임, 사회적 관심, 사회적 행동을 가질 것을 말하며, 믿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마음을 가지고 정치제도, 경제제도, 사회구조 속에도 뛰어들어 직접 관여하며 이것들을 변화시켜 나갈 것을 요구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전세계적이고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체라 하며, 세계는 변화하나 복음은 불변하고, 크리스챤의 삶이 예수를 닮는 삶,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이 되어지는 크리스챤 라이프를 강조한다. 신학적 폭이 넓으며, 이에 따라 종교적 다원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으나 다음과 같이 인종, 교파, 국가, 민족을 초월한 교회의 일치, 연합을 강조한다. 케인은 선교를 영혼구원과 사회봉사로 해석한다. 그는 "복음주의는 선교를 전도와 동일시하여 영혼 구원은 잘하지만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느린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사회봉사에서는 잘하지만,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다." 고 양자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복음주의자에서는 복음전도와 개인 구원을 강조하며 미래지향적, 피안적 구원을 말하고,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기에 행함이 약한 일면이 있고 개교회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또한 성령의 역동성, 능력을 경시하며, 신학의 폭이 좁은 면이 있다. 로잔 언약에서는 복음전도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 책임, 행동까지도 수용하며, 오순절 카리스마 운동에서 강조하는 성령의역동성을 인정하면서 성령이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임을 또한 인정한다. 에큐메니칼에서의 연합의 중요성도 인정하며 교파의 장벽을 넘어서야 함도 인식한다. 로잔 언약의 정신들은 한국 교회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인식되어야 하는 것들이며 개개 신학교들 간의 교류를 통한 연합과 신학교 교수들의 자질 향상, 그리고 목사 후보생들의 소명의식과 훈련 교육 등을 통한 철저한 복음의 고수는 선행되어야 할 과제들이기도 하다. 로잔 선교 신학이 사회 참여를 주장하고 하나님나라 선포에 있어서 예언자적인 사명을 말한다고 해서 WCC계통의 선교신학 입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마닐라 선언문은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사회참여를 계속하여 다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위 기독교화 된 사회와 혼돈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전도에서 능력의 역사, 곧 표적과 기사의 동반을 말하지만 그것이 주된 사역일 수는 없다. 로잔 신학은 하나님 자신이 주된 전도자이심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없이는 효율적인 전도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전도가 궁극적인 의미에서 악의 정사 잡은 자들과 세력과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선교신학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시점에 닿아 있다. 이른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의 보수교단뿐 아니라 모든 개개의 교단들이 초교파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영광된 말씀으로 믿고, 중요한 기본 교리 즉, 신론, 구원론, 기독론, 교회론 등에 어느 정도 일치하면 로잔 언약의 이념, 정신에 따라 서로가 연합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각 교파간, 교단간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연합, 일치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행할 때인 것이다. 한국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고들 하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와 교계의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로 뭉쳐 연합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선교를 역사신학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나 필자는 선교를 성경에 기초하여 예수의 마음 내지는 정신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본다. 복음화의 본질은 복음의 진실된 선포에 있는 것이다. 먼저 개인구원에서 시작하여 사회적 관심, 책임, 행동을 크리스챤 자신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에는 반드시 개인적이니 구원, 개인적인 예수님과의 만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역동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필자는 이러한 역동적 관계를 역동성 이론 또는 물결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역동성이 전도와 선교로 표출된다. 선교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마음, 기독교의 본질이며, 수단이나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인 것이지 교회를 성장, 부흥시키기 위해 선교를 과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는 아니라고 본다. 이제 현대교회는 누가복음 4:18-19 절에 기록한 바와 같이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약한 자, 못가진 자들을 향한 관심도 가져야 할 때이다. 그야말로 그들을 소외된 자로서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소명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내부로 포용해야할 때인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책임이 복음 전도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그야말로 온전한 복음이란 로잔에서도 언급하였듯 복음 전도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 책임, 행동을 갖는 것이다. 복음만이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또 그 어떠한 영향도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사람을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구두적 선포에서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 복음화와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을 구제, 원조, 발전 및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내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일어나나 사회 전체 내에서도 일어난다. 예수께서는 교회는 물론 세상의 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선교의 영역은 온 세상이다. 교회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교회의 사역 전체를 선교라 본다. 선교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다른 말로 샬롬의 추구와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샬롬은 평화라는 뜻과 함께 온전(Wholeness)하다는 뜻이 있는데, 선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그 '온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온전 속에는 개인 영혼 구원과 사회의 구원이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개인영혼 구원+사회구원)이라고 표시할 수 있다. 이런 선교활동을 수행하는 교회의 기본적인 자세는 '고난의 종'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일체의 선교 활동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했던 주님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세상을 섬기는 정신으로 수행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나아가 한국의 개혁주의 교회는 세계 선교의 역사적 사명에 임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풀러 신학교 선교학원 교수 Paul Hiebert는 다음의 선교국은 한국이나 인도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유는 안디옥에서 시작된 선교는 5세기에 로마가 이어받았고, 중세기에는 불란서, 포르투갈의 천주교 선교, 종교개혁 이후로는 영국과 독일, 20세기에 와서는 미국이었으나 이제 미국도 선교사가 숫자 면에서 감소되고 있다. 이제 제 3세계 교회 중에서 선교국으로 등장할 역사적 차례이다. 한국의 교회는 과거 선교의 문제점을 파악하며 현재의 위기를 직시하며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는 주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 하나님나라에 정초된 신앙공동체를 세우는 설교방안

        장기례 백석전문대학원 2020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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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의 목적은, 오늘날, 하나님나라의 몰이해로 인하여 신앙공동체 안에 침투되어진 세상적인 가치관 즉,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그리고 이원론적인 설교적 경향이 하나님나라를 저해하는 원인으로 보고 있으며, 하나님나라에 정초된 신앙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대안적이며 실천적인 전략을 모색하였다. 오늘날 매스컴을 통해서 들려지는 수많은 말씀의 홍수 속에서도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삶을 드러내지 못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계속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워나가야 할 교회인 신앙공동체가 점차적으로 힘을 잃어가고 위기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들려지는 이유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몰이해 속에 나타나는 소우주에 갇혀있는 편협한 하나님나라의 이해와 이방 문화 속에 혼합된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 문제로 보고 있다. 본 연구는 먼저,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신앙공동체에 대한 성경에서 말하는 본질과 사명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하나님나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말하며 신앙공동체는 미래성과 현재성 속에 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음을 예수께서 선포하셨고 그리고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완성자이시다. 이러한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고 확장하는 사명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5장에서는 하나님나라 신앙공동체 주창자들을 통해서 신앙공동체인 교회에 대한 본질과 사명을 재확인하면서 설교자들의 방향을 어떻게 그 설교의 목표를 세워야 하는지 토마스 롱과 찰스 캠벨 그리고 월터 브루그만을 통해 밝혔다. 즉, 하나님나라의 증인으로서 설교 주창자인 토마스 롱과 해석 공동체로서 예수 선포하기와 교회 세워가기를 주장한 찰스 캠벨, 예언자적 상상력으로서 예언자적 비판과 파토스를 출발하여 대안공동체를 주장한 월터 브루그만을 통하여 신앙공동체를 초점으로 제안하였다. 제6장은 설교자들이 실제로 하나님나라 신앙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설교의 3가지 전략을 연구 제시했다. 그 첫 번째 전략은, 예언자적 비판과 파토스를 비롯하여 시작된 대안 문화와 대안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상상력을 통한 설교전략이다. 두 번째 전략은 구속사적 업그레이드 전략으로 오늘날 복음 설교에 있어서 본문 안에 구체적인 적용으로서 설교의 전략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나라의 실천적 삶을 위한 이 땅에서 변혁적 제자도의 적용실천으로 설교전략을 모색하였다. 하나님나라에 정초된 신앙공동체를 세우는 설교방안은 이 세상의 가치관을 넘어선 하늘의 세계관 속에 이루어진다. 즉, 개인을 넘어선 하늘공동체로 대안공동체로서 서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땅에 보이는 물질을 넘어선 비전공동체, 이원론을 넘어선 생명공동체로서 구별된 신앙공동체 삶의 비전이다. 앞으로 이 논문이 하나님나라 확장의 도구로 쓰이기를 소망하며,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복음 안에서 꿈꾸며 구하는 설교자들에게 작게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속히 임하기를 소원하는 바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point out the worldly values that have penetrated into the faith community today due to the incomprehension of the kingdom of God. In other words individualism, materialism and dualistic preaching tendencies are seen as the causes of impeding the kingdom of God. Therefore an alternative and practical strategy was sought to establish a faith community founded in the kingdom of God. Today, despite the flood of many sermons heard through the media, I have come to look back on the reality of the church which cannot reveal life as a people of God's kingdom and live a life separate from the world. The reason why the community of faith, a church that must continue to build the kingdom of God, gradually loses its strength and hears a lot of voices of crisis, is the narrow understanding of the kingdom of God trapped in the microcosm that appears in the incomprehension of the kingdom of God. It is also viewed as a problem of understanding the kingdom of God mixed in the foreign culture. This study first began with an understanding of the true understanding of the kingdom of God in the Bible and the nature and mission of the Bible for the faith community. In other words the kingdom of God refers to God's rule and governance that transcends time and space and the community of faith cannot be biased to either side in the future and present. Jesus proclaimed that the kingdom of God has come to this earth and Jesus is the perfector of the kingdom of God. This kingdom of God wanted to realize the kingdom of God through the church on this earth and focused on the mission to expand it. Chapter 5 reaffirms the nature and mission of the church as a community of faith through the advocates of the faith community in the kingdom of God, revealing how the preachers should set their goals for the preaching through Thomas Long, Charles Campbell, and Walter Brueggemann. That is, through Thomas Long who advocated preaching as a witness of the kingdom of God, Charles Campbell who insisted on proclaiming Jesus as a community of interpretation and building a church and Walter Brueggemann who started as a prophetic criticism and Pathos as a prophetic imagination and insisted on an alternative community. Guidelines were proposed, focusing on the faith community. Chapter 6 presents three strategies of preaching for preachers to actually establish a faith community in the kingdom of God. The first strategy is a preaching strategy through the imagination to form an alternative culture and an alternative community that began with prophetic criticism and Pathos. The second strategy is the strategy of upgrading the history of redemption and it is the strategy of preaching by applying concretely in the text in today's gospel preaching. The third and last is to search for a preaching strategy with the application of transformative discipleship to make the kingdom of God live a practical life on this earth. The preaching plan for the faith community established in the kingdom of God is made in a worldview of heaven beyond this worldview. In other words it must stand as an alternative community as a heavenly community beyond the individual. In addition it is a vision of the life of a distinct community of faith as a visionary community beyond the visible material of the earth and a universe community beyond the microcosm. I hope that this thesis will be used as a tool for expanding the kingdom of God in the future. I also hope that it will be of little strength to the preachers who dream and seek the kingdom of God and its righteousness. I wish the Kingdom of God to come upon this earth quickly.

      •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연구 : 예수님의 비유를 중심으로

        김경태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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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특히 본 논의를 통해 ‘하나님 나라’ 에 대해 신·구약 성경을 토대로 ‘하나님 나라’ 의 개념적인 내용과 구약적 배경과 유대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 나라’ 가 어떻게 이해되어 왔으며 그 ‘하나님 나라’ 가 어떠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나아가 ‘하나님 나라’ 의 현존에 대한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가 어떠한 양태를 띠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하나님 나라’ 는 하나님 중심의 나라이며, 그리스도 중심의 나라이다. 그리고 현존하는 세상 가운데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되기 시작했고, 그 완전한 실현은 장차 오실 영광스러우며 승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신학에 있어서 기초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으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1세기 당시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날에도 역시 현재적 양태를 지니고서 그 주님의 통치아래에서 장차 완성될 그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특히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 시키신 주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서 각각의 비유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가치와 그리고 장차 궁극적으로 완성될 미래성을 지닌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고 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영혼이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고, 현재적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현재 우리가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기대하면서 궁극적으로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실 그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은 모든 만물들이 바라는 바요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의 바램내지는 소망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하나님의 나라’ 는 이 땅 가운데 이미 실현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사단은 완전히 결박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 내에서 사단은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하나님 나라’ 와 ‘사단의 나라’ 가 서로 충돌함으로 서로 긴장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긴장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 는 계속해서 확장되어가는 가운데 그 완성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은 ‘하나님의 나라’ 가 현재적이고 미래적인 두 속성 가운데 긴장된 관계 속에서 나아가지만 궁극적으로 그 나라를 실현 시키실 주님의 통치 가운데 온전히 우리의 삶을 맡길 때 현재적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 의 통치를 온전히 경험하게 되고 나아가 장차 올 완성된 ‘하나님 나라’ 에서 그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 는 오늘 우리 가운데 현재적으로 임하고 있고 장차 궁극적으로 완성될 그 날을 기다리며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완성 된 ‘하나님 나라’ 곧 영원한 나라를 기대하며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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