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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비나스의 타자철학과 민중신학의 합류 가능성 모색

        김용훈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50671

        본 논문은 레비나스의 타자윤리와 민중신학의 합류 가능성을 고찰하였다. 논문의 구성은 레비나스의 생애를 통해 본 그의 사상적, 윤리학적 배경, 타자철학의 해석학, 비슷한 배경에서 출발한 신학인 민중신학의 배경과 해석학, 타자철학과 민중신학의 비교 분석을 통한 합류 가능성 모색, 타자의 집단적 경험, 기억에 대한 연대를 통해 합류를 넘어서는 제언으로 되어 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서구철학의 일원론적인 전통은 윤리 부재의 중립의 철학 또는 전체성의 철학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전체성의 철학이란 동일성의 철학을 의미하며, 자아외부에 존재하는 타자의 외재성을 자기화하고 대상화하면서, 자기-동일시하는 철학을 의미한다. 의식의 전개 과정에서, 대상은 의식에 종속된다. 이때 만일 의식의 대상이 다른 사람인 경우에 자아와 다른 자아 사이에는 적대적 인간관계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레비나스는 타인의 존재를 자아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는 새로운 관계를 고려한다. 자아와 타자의 올바른 관계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윤리적 관계 즉 형이상학적 관계이다. 윤리적 관계는 타자를 자기동일성의 영역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열망하는 움직임 즉 타자에로의 초월성에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윤리적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출발점은 바로 타인의 얼굴이 나타내는 현현을 수용하는 것이다. 현상이 목적하는 바에 근거하여 대상을 인식하는 작용인데 반하여, 현현은 우리에게 보여지고 나타나는 것이다. 타인은 어떤 맥락과도 무관하게 가장 벌거벗은 얼굴 그 자체로 근원적 언어 즉, 윤리적 근원어를 계시하고 있다. 타인의 얼굴은 우리에게 윤리적 요청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명령이자, 우리의 도움을 구하고 간청하는 호소이다. 민중신학도 마찬가지로 타자를 책임지는 주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말함과 대속으로 설명하였는데, 말함 즉 민중의 이야기는 민중의 주체성을 확립하며 연대를 통하여 책임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통한 민중과의 연대는 타자를 향한 노출이며, 민중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우리는 타인을 위해 존재하게 됨을 논하였고, 대속은 타자의 욕구와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을 그의 입장에 내어놓는 것으로 민중에 의한 구원사건을 통해 이 시대의 고통당하는 민중, 타자의 소리에 책임을 지는 결단이 민중신학적인 대속임을 논하며 타자철학과 민중신학의 합류 가능성을 논하였다. 끝으로, 본 논문은 타자윤리와 민중신학의 합류를 넘어선 대안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 타자들의 집단적 경험과 기억, 그 기억과의 연대가 바로 그것이다.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 기억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경험한 것을 현재 시점에서 재 경험하며 또한 기억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정체성도 형성해 준다. 이처럼 우리는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나’가 되고 기억의 공유를 통해 ‘우리’가 되며 고통 받는 타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데, 타자들의 집단적 경험과 기억, 그 기억과의 연대는 오늘 날 다원화 된 사회에서 가능한 복수의 윤리를 담은 이론적 함의로 서로를 더욱 풍성한 길로 인도해줄 것이다.

      •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한국 개신교 운동에 대한 민중신학적 해석

        임태환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4 국내박사

        RANK : 250671

        안병무는 일찍이 통일코리아의 초석이 될 통일헌법의 원칙을 제안하였다. 새 나라는, 건강한 새 나라를 위하여, 첫째 원칙으로 통일이 민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둘째는 통일헌법의 초석을 놓는, 흔들릴 수 없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절대자(신)에게 둬야 한다는 것, 셋째 원칙은 공(公)사상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 넷째 원칙은 민의 압력권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를 성취해야 할 우리의 목표로 설정한다. 하여 안병무는 왜 이런 요청을 하기에 이른 것인가를 묻는 질문은 논문의 중요 과정이 된다. 압제와 인권유린 및 수탈의 자유당 독재와 군부독재의 긴 터널에서 제주4.3항쟁, 4.19민주화학생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화항쟁은 피할 수 없이 발생한다. 이들 항쟁, 투쟁, 혁명의 과정은 드디어 그 근본적인 문제의 진원이 분단모순에서 출원한다는 확진에 이르러 지축을 흔드는 이들 민족사적 사건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추구되었던 통일 지향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서남동은 부활의 공동체성, 부활의 ‘새로운 사회와 질서, 정의와 평화를 여는 출입구’를 새 시대의 답으로 제시한다. 그 창발적 지향이 통일 코리아에 다다르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 민중신학적 방법과 관점 그리고 목표에서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한반도의 분단체제의 현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남북한의 분단된 민족이 하나로 합류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인 길을 모색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 길은 민족통일의 길이며, 통일을 가장 원하는 세력은 기득권 지배세력이 아니라 가장 고통당하는 민중들임을 확인하고, 따라서 여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통일이 논의되고 실현되어야 할 것임을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통일을 위한 합류하는 정신적 거점과 추동하는 힘으로 모아내는 방법을 궁구하는 일이다. 민중신학은 ‘현장성’을 말한다. 고난의 현장이다. 거기가 ‘하느님의 선교’의 현장임을 확인한다. 이제 민중신학은 민족의 분단, 분단체제의 질곡을 ‘하느님의 선교’의 현장, 고난의 현장으로 알고 그 부단한 활동, 그 정밀한 파토스에 하느님의 파토스가 조응하는 때를 기대한다. 그것은 하느님이 일으키며 민중이 조응하고, 민중이 일으키고 하느님이 조응하는, 상응의 사건이다. 그 사건이어야 한다. 새 시대, 남북연합으로 가는 노정에 참여하는 일체의 시민참여형의 대열이 펼치는 모든 자리를 민중신학은 새삼 자기 현장으로 알고 있다. 흩어진 힘의 다양한 관계를 어떻게 다시 건전하게 묶어내고, 타자에 대한 책임과 연대를 확대 재생산하는가 하는 것은 거기 전면적으로 편만한 고난의 현상적 실체를 하나로 인지하고 한 목소리로 견지하여 전진하는 실천의 기운에서 온다. 민중신학은 예수를 가장 예수답게 증언하려는 노력이다. 예수 정신의 중핵, 예수 삶의 중핵, 예수사건의 중핵을 찾아 증언하려는 것, 그것이 민중신학의 정체성이다. 한의 사제 예수이고, 한의 사제 민중신학이다. 지금 민중신학은 민중신학의 현장을 민족통일신학의 사명으로 더 확장해야 한다. 그 현장은 분단 한반도 전역, 전 남북민이다. 통일코리아는 전 코리아 인(민, 인민)의 합류 사건이어야 한다. 민중신학은 민족통일신학으로서의 의의와 역할을 심화 실천해야 할 요청을 받는다. 예수가 연 그 ‘하느님 나라’를 누가 소망하겠는가? 누가 환영하겠는가? 누가 박수갈채를 보내겠는가? 누가 참여하겠는가? 누구에게 소용이 되겠는가? 현영학이 물었고, 서남동이 물었고, 안병무가 그렇게 물었고, ... 그리고 그들이 답했다. “민중들이다!” 그래서 문익환은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꿈처럼 날아서, 그의 시(詩)처럼 날아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저들을 해방했다. 한반도 분단은 한민족 전체를 민중적으로 단말마를 내지르게 했고 오늘도 그렇다. 이 민중적 현실은 타자(외부)로부터 해결할 길이 아득해 보인다. 상처투성이의 민중적 민족은 상처투성이의 갈라진 한쪽이 상처투성이의 갈라진 다른 한쪽과 부둥켜안고 서로의 상처를 피차 보듬어 치유하려할 때, 곧 상처받은 몸으로 상처받은 너를 치유하는 치유자의 역할로 임할 때, 다시 곧 여기서 우리는 민족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치유하기 위하여 우리가 기꺼이 스스로 죄인의 자리를 자취하려 임할 때 그 때만이 우리 함께 모두 치유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그때가 더 늦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거기에 이르는 길의 도중에 있다. 그 길 위에서 고난이 끝없다. 그것은 아직도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인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기에 또는 당연히 민중신학의 정위는 거기 역사의 자리다. 한반도 민족통일신학의 자리가 그 자리다. 민중신학은 화해·포용정책에서 민족통일신학의 역할로서 단연 독보적일 수 있다. 민중의 주체적 자리를 확보하고 사건의 해석학적 중심으로 호명해내는 자리가 그의 정위다. Ahn Byung-Mu early suggested the principles of the unified constitution which would be the foundation of the unified Korea. The new nation, for the new healthy nation, should be founded on 4 principles. The first, the re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should be achieved by the people(民). The second, the standard of value judgment which cannot be changed to lay the foundation stone of the unified Korea, should be put on the absolute being(神). The third, the fairness idea(公), that is, the state belongs to the all nations, the commonwealth, should be applied. The fourth, the pressure rights of the people should be enacted.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is to establish this as our goal to achieve, on the other hand, it naturally includes the question why these requests were brought about by Ahn Byung-Mu. In the long tunnel of oppression, violation of human rights, and exploitation fulfilled from the Liberal Party’s autocratic phase and a number of military governments’ dictatorship, Jeju 4.3 incident(struggle), 4.19 Democratization Student Revolution, 5.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June Democratization Struggle occurred inevitably. The process of these movements, struggle, and revolution ultimately reached the definite diagnosis that it stemmed from the division contradiction, the origin of fundamental problem, so the will for unification of the country have been gradually confirmed, which had continuously appeared and been pursued in the process of these earthshaking national events. Suh Nam-Dong suggested communal attributes of the Resurrection, ‘the entrance to open the new society, the order, the justice and the peace’ of the Resurrection, as the answer of the new era. That emergent aim is to reach the unified Korea. This paper aimed at investigating and researching the way that the divided people of the south and the north would get together and become the historical subject with the method, the point of view and the goal of this Minjung Theology, cutting off the vicious circle of the reality of division system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suppresses and exploits the people. The researcher intended to confirm that the way is the unity of nation, and the group which wants unification the most is not the vested ruling power but the most suffering Minjung, accordingly, grasp the point that unification should be discussed and realized from the viewpoint of Minjung Theology, which suggested the problem of this. Also, it is to investigate the method to collect the mental base and the driving force to get together for national unification. Minjung Theology indicates the field in ordeal, and asks you are the real person sharing sufferings with the people there. It’s the place in present sufferings. It confirms that place is the field of Missio Dei. Now Minjung Theology realizes the ordeal of the division of nation as the field of Missio Dei, the divided system being the site of hardship. Constant participation in Missio Dei expects God’s pathos accords with that precise pathos. That is the corresponding event, which God raises and the Minjung corresponds, and the Minjung raises and God corresponds. It must be that way. Minjung Theology anew realizes that entire area which the whole public participation spread as its own, that participation in the path to the new era, the union of the south and the north. The point to bind the various relations of scattered power soundly again and expansively reproduce the responsibility and alliance to the other comes from the energy of practice to advance by recognizing the phenomenal substance of wholly diffused hardship as one and by adhering it to one voice. Minjung Theology is an effort to testify Jesus most like Jesus. The identity of Minjung Theology is to seek and testify the core of the mind of Jesus, the core of the life of Jesus, the core of the events of Jesus. Priest of Han is Jesus, Priest of Han is Minjung Theology. Presently Minjung Theology should more expand the site of Minjung Theology with the mission for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That site is the whole area of divided Korean Peninsula, the whole people of the south and the north. Unified Korea should be the unification event of the whole Korean people getting together. Minjung Theology is requested to intensively practise the meaning and the role as the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Who will desire the kingdom of God which Jesus opened? Who will welcome it? Who will clap and cheer for it? Who will participate in it? For whom will it be useful? Hyun Yeong-Hak asked, Suh Nam-Dong asked, Ahn Byung-Mu asked like that ... and they answered. “They’re the MINJUNG!” Therefore, Moon Ik-Hwan flied as a butterfly, fluttered like a dream, flied like his poem, met Kim Il-Sung, unchained them. Korean Peninsula division has struck death throes of the whole people until now. The way to solve this popular reality from the other(outside) seems remote. Scratched popular nation can be healed only when one divided side with scars intends to embrace and heal each other’s injury by embracing the other, that is, the injured body undertakes the healer’s role to heal injured you, again here when we willingly take the position of the sinner to heal this problem from the viewpoint of the national people, then we can be healed all together, therefore, that time should not be delayed any more. However, still we are on the way of the path to reach there, the envisioned reunification of our own country. On the way, hardship is endless. That’s maybe because it's still the road of the Cross. Nevertheless, or therefore, or naturally, the right position of Minjung Theology is the position of that history, to perform the miracle of reconciliation. The position is the site of Korean Peninsula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Minjung Theology can be definitely unique in the reconciliation·tolerance policy as the role of national unification theology. Its right position is to sec

      • 죽재 서남동 신학의 선교 신학적 고찰

        유상신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50671

        선교, 상황, 그리고 민중신학, 이 세 가지 요소가 오늘의 교회가 해방적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전체 글에 흐르는 핵심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들이 각자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취하는 것이 아닌 서로 관계되어지는 상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써 필자는 서남동의 신학을 그 예로 들고자 했다. 본론에서 살핀 서남동의 신학 방법론은 선교와 신학이 당시의 상황에서 어떻게 합류되고 전개되어지는가를 밝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는 우선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서 종래의 제도적 그리스도교의 틀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신학을 '반(反)신학'이라고 밝혔듯이 서남동은 기존의 신학 방법론에 얽메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방법론이 주는 폐단에 적극적인 비판을 가하며, 민중의 현실을 반영하는 신학을 전개했던 것이다. 즉 서남동의 신학은 민중의 현실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신학의 출발점이 달라졌다는 것은 단지 새로운 신학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혁명적인 의미로써의 신학의 자리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의 신학 방법론의 변화는 모든 총체적인 것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선, 신학의 주체자가 신학자나 교회에서 민중으로 옮겨진 것을 표현하는 것이고, 성서를 해석하는 안목이 변했다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세상,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남동에게 있어 어떠한 점이 그의 신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는가? 그것은 민중신학이 태동하게 된 시대적 상황을 주목함으로써 알 수 있다. 즉 당시 민중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상황이 서남동으로 하여금 기존 신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본론의 서남동 신학의 예에서도 보았듯이 '상황'은 '신학의 근본적인 자리'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바뀌어진 신학의 구체적 행동으로 '선교'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들은 하느님의 선교의 장인 세상에서 끊임없이 상호간에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장신학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서남동의 신학은 이러한 현장신학의 메커니즘을 70년대의 한국적 상황에서 가장 잘 표출해 낸 소중한 전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에 있어서도 여전히 서남동의 신학이 앞선 가치를 가지고 오늘의 교회와 민중들에게 전해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미 서남동 신학이 갖는 가치들을 본론에서 거론했듯이, 그것이 오늘에 있어서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한다. 물론 오늘의 상황과 서남동이 신학을 전개했을 때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회가 해방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신학적 근거를 서남동 신학의 창조적 계승 과정에서 찾는 것이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특히, 서구화된 틀과 전통적인 제도만을 강요하며 상황을 무시한 체 신자 수 늘리기 식의 개종주의 선교정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 땅의 교회의 모습이 여전히 우리시대의 교회의 이미지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를 다시 하나의 거대하고 통일된 형태로 종교 세력화하려는 근본주의 운동들의 재활성화, 점점 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며 인권을 유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세계화, 보다 치밀하고 새롭게 진행되는 문화제국주의, 정치적 허무주의, 생태계 파괴, 여성억압, 인종차별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 땅의 교회는 여전히 효과적인 대안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도 오히려 제도 교회는 자신의 모습을 더욱 특권화 시키고, 기업적인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세계 내 무수한 경쟁체제 속에 합류하여 권력화 하고자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의 선교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교회는 선교적 위기를 깨닫고 이에 대해 진심으로 마주하게 된다. 선교가 단순히 '그리스도교화 시킨다'는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면 그것은 단지 제도교회를 지속시키는 하나의 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선교가 세상에 파송된 자로써 세상에 있어 해방적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의 본질로 인식된다면 오늘의 교회는 내부적 혁명과 더불어 세상과 하느님께 봉사하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적 현장에 집중하고, 민중적 현실에 구체적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서남동의 신학적 노력이 결국 기존의 가치를 뒤집고 민중적 현실을 반영하는 '민중신학'을 창출하였다면 오늘의 민중신학은 변화된 세상의 틀 안에서 새롭게 우리시대에 맞는 현장과 결합된 신학과 선교를 이끌어 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새롭게 전개될 민중의 신학도 역시 민중의 상황에 집중하고, 그러한 민중적 상황을 하느님의 선교가 일어나는 현장으로 인식하며, 과거의 해방적 전거들을 끊임없이 해석하는 작업과 또한 민중을 신학과 선교의 주체자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지속된다면 다가올 세대에 있어서도 우리는 새로운 해방적 전통으로써의 신학과 선교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대의 상황과 해방적 선교사명에 충실하고자 했던 서남동의 신학이 우리 시대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거로써, 모범으로써 제시된다는 것은 오늘의 교회와 선교 역시 상황과 해방적 사명에 충실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세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어떠한 변화 과정을 겪더라도 이 땅의 교회가 세상 가운데에서 해방적 사명을 수행하고자 할 때, 비로소 교회의 선교는 민중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 E. S. 피오렌자, M. W. 두베, 한국여성신학의 성서해석, 프락시스, 대안적 공동체 비교연구

        정현진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21 국내박사

        RANK : 250671

        이 논문의 목적은 다른 문화권과 역사적 상황에서 출발하는 신학자들, 피오렌자(Elisabeth Schüssler Fiorenza), 두베(Musa W. Dube), 그리고 한국여성신학의 1)성서해석방법론 2)프락시스 3)대안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론을 연구하고 비교하는 것이다. 본 논문을 통해 그들의 인종과 문화, 역사적 현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통’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을 찾으려한다. 연구자는 피오렌자, 두베, 한국여성신학 각각이 가지는 특수성과 아울러 그것을 넘어서는 공통점을 찾고, 그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여성신학의 정체성, 나아가 21세기 포스트모던 신학의 방향성을 확립하려고 한다. 본 논문이 말하는 정체성이란 각 신학자들의 신학방법은 달랐지만 여성과 이 시대를 매개하기 위해 성서해석을 새롭게 요청했던 점,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대안적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이 논문에서 다루는 신학자들의 신학은 제일 먼저 성서의 경전성을 묻는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성서의 경전성을 묻는다는 것은 결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성서의 의미와 중요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본 논문에서 다룬 신학자들은 성서의 의미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성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성서의 경전성을 새롭게 만들어나간다. 성서의 경전성은 전제가 아니라 그것의 결과로서 말해져야 한다. 즉, 성서가 현재 억울하고 눌린 사람들에게 생명이 될 때, 성서는 경전의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성서의 정경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요청되는 해방과 생명의 기준에 따라 그 의미와 역할을 수정해 나가야 한다. 여성신학의 프락시스는 다양한 여성신학을 하나로 묶는 정체성의 한 요소이다. 여성신학은 말로 하는 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신학이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성적 억압과 차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여성신학이 출현하게 된 억압적 배경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프락시스는 다양한 여성신학을 넘어서는 ‘여성신학’의 보편성을 의미한다. 여성신학은 공동체적 관점에서 성서를 본다. 그것은 한 여성이라는 개인적인 개체성을 넘어선다. 필자는 여성신학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공동체적 성서해석이 우리시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사적 관점을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여성의 경험, 여성신학의 고뇌, 여성신학의 꿈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한국교회에, 또한 모든 동시대인들에게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이 논문은 각 신학자들의 성서해석, 프락시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론을 비교, 평가함으로서 이 세 가지가 여성신학에 있어서 여성신학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구성요소임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신학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를 탐색해 본다. 동시에 본 논문에서 주장한 성서 해석, 프락시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론은 21세기의 새로운 신학을 위한 토대가 됨을 보여준다.

      • 개혁주의 영성신학과 수덕

        정도환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22 국내박사

        RANK : 250671

        본 연구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개혁주의 안에 있는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고, 둘째는 그 오해를 바로잡아 목회 현장 속에서 신앙의 수덕적 요소를 접목시켜 성도들의 신앙성장과 발전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의 발자취를 살펴보았고, 그에 따른 수많은 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의견을 수집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논증으로도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일단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판단의 절대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원천적 자료, 즉 성경 속에서 영성(영성신학, 신비신학, 수덕신학)의 요소를 찾아내려고 하였다.

      • 칼뱅신학에 기초한 예전영성공간 연구

        박하은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4 국내박사

        RANK : 250671

        첫째, 초기 기독교 예전 공간에는 예전의 이중적 구조가 담겨 있다. 말씀의 예전을 위한 설교단과 성만찬을 위한 성만찬테이블이 제단 한 가운데 놓여 있고 독경대가 따로 독립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상징성이 드러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 공간에는 각종 신비로운 형상들이 자리잡는다. 각종 조각들이 벽면에 장식되기도 하고, 높은 천장에 회화로 채색하기도 했다. 앱스에는 벽화를 통해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는 효과를 가지기도 했다. 창문에 색유리창(Stained glass)은 빛의 변화하는 신비로운 형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하는 심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수도원의 검박하고 간소화한 영성적 요소는 교권주의로 인해 변질된 교회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둘째, 종교개혁 시대에는 신학적 수정으로 인해 교회 건축의 모습도 변화한다. 칼뱅 신학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제단에 위치한 성만찬테이블이 가운데 놓이긴 하지만 크기가 작아지고 높이는 낮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만인사제설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칼뱅의 신학이 왜곡된 점이 있다. 칼뱅이 매 주일마다 성만찬예전을 행하기 원했던 것과는 달리 제네바의 관료들과의 협정으로 한 달에 1번 정도로 성만찬예전을 드리는 것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칼뱅은 신학적 의도에서 말씀의 예전을 회복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지만, 성만찬의 예전을 없애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셋째, 한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 장로교의 예전은 종교개혁기의 예전과 관계없는 미국 개척시대의 전도집회식 예전을 배웠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는 말씀을 강조하는 설교단이 예전 공간의 중심점을 이뤘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미국 대형교회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한국 장로교에도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한국장로교를 포함한 개신교회들은 교회성장을 위해 밴드 음악을 중심으로 한 미국 교회의 예배방식을 도입했는데, 제단의 공연장화가 유행했다. 제단에서 설교단마저도 줄이기 시작했는데, 설교단이 한 가운데로 옮겨지고, 독경대는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성만찬 테이블은 1년에 고작 1-2회 정도 사용하도록 이동식으로 제작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런 한국 장로교의 자기반성적 성찰에서 이 논문을 작성하였다. 가톨릭 성당이 주는 장엄함과 엄숙함과 수도원적 영성을 연상했다. 빛으로 승화되어 천상을 보게 하는 앱스(제단)는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교회의 자유로운듯하면서도 곳곳에서 신앙적 경험을 누리게 하는 작은 앱스들, 동시에 말씀을 나누는 제단으로 향하게 하는 예전 공간구성과 둥근 돔으로 표현되는 천상은 정교회의 신학이 구현된 실례이다. 이에 반해 한국 장로교의 예전 공간은 대형 십자가 밑에 설치된 설교단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대형 공연장처럼 구축되는 현대 한국 장로교의 예전 공간은 영성적인 측면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 신과 자연 속의 인간 : 장일조 철학의 인간이해와 신학적 함의

        이한오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5 국내박사

        RANK : 250671

        국문초록 이 논문은 장일조의 인간이해와 그 속에 담긴 신학적 함의를 연구한다. ‘세계체계철학’으로 표현하는 그의 철학은 세계전체를 체계적인 틀 속에서 파악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론적 지위와 윤리학적 사명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러한 장일조의 철학에는 오늘날 해체된 세계상과 파괴된 세계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 사유의 시사점이 있다. 이 논문은 그의 저작물 전체를 검토하여 재구성하고, 그의 인간이해가 지니는 의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장일조의 철학은 1970년대 후반에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로 일단락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 『철학적 비망록』으로 다시한번 체계화되었다. 이 두 저서는 그의 철학 전체를 총괄하고, 또한 그 속에 담고 있는 주제가 보편적이면서도 현재적이어서, 이 논문의 주텍스트로 삼는다.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는 인간을 자연 속에서 파악한다. 여기서 장일조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분배의 정의를 통한 자연적 욕망의 평등을,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는 생태적 조화를 주장한다. 장일조에게 인간의 윤리는 자연을 보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를 위해 금욕적 세계관과 생활태도가 요청된다. 이 논문의 Ⅲ장 “자연 속의 인간”은 이러한 철학적 입장을 규정한 명제이다. 『철학적 비망록』은 신과 자연으로 전체의 범위가 넓어진다. 신과 자연이 대우주이고, 인간은 그 대우주의 양극성을 내포한 소우주로 파악한다. 그는 세계를 원래 신과 인간과 자연이 통일된 전일적 세계체계로 이해한다. 하지만 신의 죽음과 자연의 파괴로 인간 스스로의 운명도 위기에 처한 오늘날 해체된 세계를 전인적 윤리성으로 회복하기 위한 철학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인간은 신과 자연 사이에서 신성과 자연성의 양극성으로 통일된 존재론적 매개자(媒介者)로 규정된다. 또한 인식론적으로는 자연과 신을 연결하는 축점(軸點)으로 역할하고, 윤리학적으로는 몸은 자연성에 의지하지만 영혼은 신성을 향한 자기비허적 금욕을 통해 신의 활동에 동참하는 참여자(參與者)로 역할한다. 이 논문의 Ⅵ장 “신과 자연 속의 인간”으로 『철학적 비망록』을 압축한다. Ⅴ장에서 전개할 “전일적 세계관의 신학적 함의”는 장일조 철학의 특징을 신학적 개념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세계관과 창조론, 그의 인간이해에 담긴 신학적 요소, 신과 자연을 통일시키는 인간의 윤리개념과 구원개념을 연결할 것이다. 이는 창조와 구원이라는 신학의 핵심개념을 장일조 철학으로 해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장일조에게 인간이란 신과 자연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천리(天理)를 따라 가는 붓다와 예수의 정신적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인욕(人慾)을 따라 가는 길은 맑스와 레닌의 물질적 길을 갈 수도 있다. 인간이 세계에 열려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가능성 때문이다. 열린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이 바로 세계의 세계성에 부합하는 전인적 인간의 윤리성이다. 이 논문은 장일조 철학의 비판적 재구성과 신학적 해석을 통해, 그의 철학 이 우리 시대와 미래에 요청되는 철학과 신학을 위한 대안적 사유틀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핵심어 : 욕망, 충족, 금욕적 절제, 윤리, 존재론적 매개자, 인식론적 축점, 윤리학적 참여자, 창조, 안식일, 구원, 철학적 인간학, 신학적 인간학, 신, 인간, 자연, 신과 인간과 자연의 통일, 세계체계철학.

      • 띵구앙쉰(丁光訓)의 신학사상

        이경래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2 국내석사

        RANK : 250671

        自從1950年9月23日 中國基督敎發表了"三自宣言"以來,經過了所謂"文化大革命"的艱難的時代,中國基督敎會不僅屬于基督,也成爲屬于全中國的。解放以前,中國基督敎原有70多개宗派,各宗派間有了不團結甚至互相攻擊的現象,但是現在他們在信仰上實現相互尊重,聯合禮拜的敎會生活中進入了宗派后時期(post-denomination era)。 按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五十一周年總結, 過去五十多年大約可分爲三개階段。自1950-1966年是第一階段,主要任務是實現自治自養自傳。 1966-1978年因受"文化大革命"的庶擊, 敎會事工被迫頂頓。自1978-1998年爲第二階段,主要任務是按三自原則辦好敎會。 而自1998年年底開始是第三階段,主要工作是加强神學思想建設。這三개階段旣有區別,又有聯系,每一階段是前一階段的繼續和深化。在如此的影響下,中國基督徒認識到愛國여愛敎是不矛盾的,基督徒應該是旣愛國又愛敎。 丁光訓主敎(1915-)是中國基督敎的領袖,自1980年단任中國基督敎三自愛國運動委員會主席和中國基督敎協會會長起,肩負着中國敎會建設的重任,而且作爲一名神學家,他的神學思考一直服務于中國社會和中國敎會。在他的一生中,自始至今他卽是一位摯愛着中國敎會的中國思想家,同時又有一位深愛自己祖國的基督敎神學家。他通過文字著作,通過各충公開活動和參政,儀政,他始終在努力地推動着敎會여敎會以外的世界之間的對話。他盡管遭受到來自保守派敎會人士的批評和攻擊,但是,他在20世紀80,90年代在敎會重新對外開放以及中國敎會여普世敎會交流上的重大貢獻是受到엄泛公認的。 丁主敎一貫흔重視自傳和神學硏究。"神學是敎會在思考"。他認爲不思考不反省的敎會是死的。他所提成的神學思考是如何把基督敎的信仰和生活的實結合起來,成爲旣合乎理性又具有越能力的理論。他多次提到基督敎的普世性和地方性(特殊性)的相互關系。他主張中國敎會應該有自己的神學。他有選擇地參考和吸收某些西方現代神學的理論,加以發揮,爲中國所用。 從神學思想來看,丁主敎的神學思想主要受到四충思想的影響: ⅰ) 德日進(Teilhard de Chardin)的進化思想; ⅱ) 부特海的(Alfread North Whitehead)過程哲學; ⅲ) 解放神學的實踐(praxis)的認識論; ⅳ) 골公會神學的中道(via media)思想。 在神學上,丁主敎特別强調上帝是宇宙的愛者,而不强調上帝是嚴려的審判者,從而不刻意渲染人的罪。他認爲愛是三位一체中三개位格相互關系的特征。對于上帝創造者,他特別强調上帝是愛的上帝,愛是上帝神골的內在本質,同時對于上帝而言,他也需要人類,上帝是人類慈愛的父親,人類是上帝的孩子。 耶소基督是上帝之子,福音書記載他道成肉身來到世上幷宣揚倫理道德的人性一面; 又有基督是宇宙的基督,万有在他里面的一面,這一点充分表現了丁主敎愛的神學。 골靈是三位一체這一奧秘團契中的第三位。 골靈旣賜恩給敎會,給基督徒,골靈也啓示一切的受造物,帶領一切的受造物趨向于眞善美。 골父,골子,골靈同工同契,一起進行特續的創造之工,救贖之工和골化之工。作爲人類的我們就是要參與到這樣的골工之中,幷盡我們的所能作出貢獻。雖然人是上帝創造的不同程度的"半成品",但是愛的陶匠會把我們塑造成他的同工,讓我們參與他的創造與救贖奇功中,幷逐步走向完全。 在與社會對話時,丁主敎的根本出發点是肯定无神論者致力于個人和全社會的生活和生活改善以及積피評介非基督徒的各충各樣的美好行爲。 在論述有關宗敎在中國的社會作用時,他竭力反駁宗敎鴉片論,저認爲宗敎是鴉片的論点旣不符合實際又不符合馬克思主義。理解中國宗敎信仰自由的關鍵是理解宗敎여당的關系,其核心是"求同存이"的原則。丁主敎說,中國共産당對宗敎問題的態度是團結的原則,卽在統一戰線的原則解決宗敎問題。 我覺得丁主敎的神學思考在韓國基督敎界也造成4개方面的影響: ⅰ) 神學自主性的開發; ⅱ) 后宗派敎會的實現; ⅲ) 南北韓宣敎的坐標; ⅳ) 宣敎學的反省。 今天中國社會正處于改革開放的急劇變化過程中。中國敎會고的"處境化神學"不可能過早提出系統化的要求,所以他們是從中國社會和中國敎會的現實的處境出發,試圖把基督敎信仰和中國傳統文化以及民族特点給合起來。 這些中國敎會的神學思想建設過程中,丁主敎的神學思考可以成爲中國敎會흔好的路標。不過,我在他的神學思想還是感受不到濃郁的中國傳統文化的特色。我想這類現象將成爲我們的重要任務之一。我希望中國和韓國敎會能구成功地實現自己民族的特色和現代化之間的融合。

      •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 연구 :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의 신학적 정체성에 관하여

        홍경만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2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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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 연구 (A Study on the Worship Space of Korean Lutheran Church) - 부제: 한국 루터교 예배공간의 신학적 정체성에 관하여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미사가 집례될 때 성만찬을 분급 받으려는 사람들은 교회의 한 장소에 집단을 이루어 따로 모여야 한다. 제단과 성단소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고 말했고, 이정구는 “예배를 통해 사람은 신성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종교 건물과 공간, 성물들은 절대자의 신성을 담지하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예배공간은 교회건축물의 핵심 공간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전례를 수행할 예배공간이 필요하다. 루터교는 전례 교회이다. 그러나 1958년에 한국에 전래된 이후부터 2012년 현재까지 반세기 역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건축과 예배공간 및 성가구 등의 연구와 적용에서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본 논문은 한국 루터교회들을 연구하여 전례 교회로서의 바람직한 예배공간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 논문 1장 서론에서는 연구동기와 연구대상 및 범위 그리고 연구방법과 연구목적 및 연구기대를 다루었다. 본 논문은 기독교한국루터회와 대한성공회가 초창기 교회건축과 예배공간 구축을 선교사들이 주도했다는 같은 점에서, 성공회대학교 이정구 교수가『Architecture Theology in Korea』에서 대한성공회 강화교회와 서울 주교좌교회를 분석하고 연구한 “실용적 전통의 분석”, “역사적 조망에서의 분석”, “교회건축 해석을 통한 신학적 언어와 그 적용”, “교회의 미래를 위한 예배공간 방안의 조망” 이 네 가지를 응용했다. 본 논문의 연구기대는 내부적으로 한국 루터교 안에서 예배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예배공간의 신성함 및 실용성에 대한 바람직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외부적으로는 전체 그리스도교의 전통 전례를 위한 예배공간 이해에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선교적 측면에서 현대 교회에 바람직하고 알맞은 예배공간의 공공성 연구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제2장 본론은 “1. 교회건축과 예배공간의 역사” 연구로써 시작했다. 도입부분에서는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독일철학자) 등 근대 철학계가 공간문제에 가지는 관심과 제임스 화이트(James F. White, 1932-2004) 및 정시춘 등 국내외 예배학자들과 건축학자들의 주장들을 다루었다. 특히 논문 전체에서 본 연구를 지도한 이정구 교수의 연구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참조했다. 또한 본 연구는 예배공간 이해를 위해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건축 역사를 다음과 같이 시대별로 개괄했는데, 1)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 2)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정집 교회, 3) 바실리카, 4) 각 시대별 건축과 공간 연구, ① 고대 그리스와 로마, ② 비잔틴(Byzantine, A.D. 330-1453), ③ 로마네스크(Romanesque, A.D. 1000-1200), ④ 고딕(Gothic, A.D. 1150-1250), ⑤ 르네상스(Renaissance)와 16세기, ⑥ 바로크(Baroque, 16세기말-17세기), ⑦ 신고딕(Neo-Gothic, 19세기), ⑧ 20세기 근대의 예배공간의 공공적 활용까지이다. 특히 제2장 본론 “2. 루터의 종교개혁과 건축 및 토어가우 루터교회의 예배공간(16세기)” 연구에서는 1544년 10월 5일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집례로 봉헌된 독일 토어가우 성(城)교회(The Castle Church in the Saxon town of Torgau)를 연구했다. 작센(Saxony)의 영주이며 루터의 종교개혁을 후원한 프리드리히 선제후(John Frederick the Magnanimous, Elector of Saxony)의 지원을 받은 루터는 만인사제직에 따라 회중을 위한 말씀과 성찬식을 실현하기 위해 이 교회를 건축했다. 루터는 이 교회의 예배공간을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가 지향했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집(Domus Ecclesiae)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본 논문은 이 교회 연구를 통해 루터교 예배공간 구축의 신학적 및 역사적 의의를 살폈다. 제2장 본론 “3. 한국 루터교의 예배공간 연구”에서는 본 논문의 연구목적인 한국 루터교회들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였다. 여기에서는 이 연구의 바람직한 정체성과 분명한 목적을 위해, 먼저 500년간 루터교 전례의 근간이 되는 “루터의 예배신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믿음의 응답, 둘째로, 믿음의 원리가 작용하는 하나님의 자기계시, 셋째로, 은총의 방편, 넷째로, 예배의 공동성이다. 전례 또는 예배의식에 대한 어원 레이뚜르기아(Leitourgia)는 노동(ergon)과 국민(laos) 즉 국민이 함께 이루는 공익사업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기독교한국루터회는 주일 전례를 “주일공동예배”라고 부른다. 루터 자신이 토어가우루터교회에서 성만찬식탁으로서의 제단(freestanding altar)과 회중석(nave) 사이에 어떤 거리감도 없는 환경을 만들고, 신도들이 자기나라 말(vernacular)인 독일어로써 찬송을 부르는 전례를 거행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예배신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루터의 예배신학 다음으로 “기독교한국루터회 예배서”를 소개했다. 한국 루터교의 전례 예배서는 1960년 미국판을 편역한 첫『예배서』를 시작으로, 1965년 “공동신조”와 “교회연력표” 및 “교회절기와 성구”가 들어간『예배의식문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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