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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육대학교 신학과 신학교육 발전에 관한 연구

        김선호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5 국내석사

        RANK : 249679

        본 연구의 목적은 지난 1917년부터 시작된 삼육대학교 신학과의 발전과정을 제1장에서는 문제의 진술, 연구의 내용을 기술하였다. 먼저 제2장에서는 삼육대학교의 신학 교육을 별설기, 독립기, 재건기, 발전기, 그리고 학장기로 분류하여 각 시대별 교육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첫번째 병설기(1917년-1930년)는 한국 재림교회가 개척지에서 개척지 합회로 승격되던 해인 1917년에 생긴 최초의 고등교육 과정으로서 이는 당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시기의 학교의 모습은 교수나 시설면, 학생의 수준 등이 덜 갖추어진 신학 교육의 초창기라 할 수 있다. 둘째로 독립기(1931년-1942년)년에는 1931년 학교를 서울로 이전함과 아울러 선교사 가운데 고등교육을 감당할 만한 학문적, 목회적 자질을 갖춘 이시화 목사를 책임자로 세움으로써 좀 더 발전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여러가지 상황이교육을 안정시키기에는 어려운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신학 교육은 일제의 강압으로 1942년에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셋째로 재건기(1947년-1950년)는 광복 이후 신학 교육을 재개하면서부터 6.25전쟁이 일어나는 때까지의 기간이다. 이시기에는 교육의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장차 한국 재림교회의교육의 기초를 다지는 역사의 중요한 한 획을 긋게 되었다. 다섯번째 발전기(1951년-1969년)는 2년제의 삼육신학원이 4년제로 각종 학교를 거쳐(1954년), 4년제 정식 대학으로 성장하게 된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에 한국인들이 학교의 행정 책임을 선교사들로부터 건네 받음으로써 교육으 토착화가 이루어진 시기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겠다. 여섯번째 확장기(1981년-1995년)는 교육 여건(교수진, 시설)이 급속하게 개선됨을 통해 교육이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되는 시기였다. 제3장은 삼육대학교 신학 교육의 발전상을 부분별로 살펴보았다. 첫째 교육환경의 세 요소인 교수진, 시설, 그리고 교육제도를 고찰했다 재정적인 어려움과 건설 규제에 관한 까다로운 법으로 인해 쉽지 않은 문제 였지만 꾸준한 노력과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교수진의 학위 취득을 통한 자격을 갖추는 것과 교육을 위해 요구되는 여러가지 시설들의 마련이 이루어진 것을 살펴보았다. 둘째로 교육의 핵심이 교과 과정의분석을 통해 4년제 정식 신학교육이 이루어진 1961년 이래 지난 35년간 세 갈래로 구분디는 교과 과정(교양, 전공, 일반 선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삼육의 이념이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되었는가를 전도 및 봉사활동과 병역문제를 통해 조명해 보았다. 이러한 내동들을 살펴볼 때, 지난 78년의 세월 동안에 삼육 신학교육은 교회와 민족의 역사를 공유하는 가운데 삼육 교육으 이념 구현을 위해 매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 대학을 위해 헌신한 일꾼들의 수고 위에 기초아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삼육의 신학 교육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잊어 버리는 것 외에는 다가오는 21세기에 대하여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는 선지자의 교훈을 실천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 삼육대학교 신학과 여성 졸업생들의 진로 실태와 의식에 관한 연구

        서영순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RANK : 249663

        전도부인 양성을 목적으로 개신교에서 초기 여성 신학교육이 시작된 때는 장로교회 1888년,감리교회 1905년이었다. 교회 여성 교역자 출현은 여성 선교사들과 선교사 부인들이 그들의 보조자로 한국 여성을 전도부인으로 임명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들은 낮은 학력과 짧은 성경 지식에도 불구하고 초기 한국교회 교 회생활 전반에 걸쳐 지도자로 일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 여성 교역자는 높은 학력과,훈련된 일꾼으로 소명감에 불타고 있으나 목사 보조자로 주로 일하고 있다. 교회는 제도적으로 그들의 역할을 제한,축소하기 때문에 이들의 능력과 에너지는 사장되고 있다. 삼육대학교 신학과 여성 졸업생 및 재학생은 2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90%)본교회 지도자로 일했으며,그들 중 상당수는 목회자 부인이다. 여성 졸업생들은 신학을 전공 한 것에 절대 다수가 긍지를 느끼고,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고 했으나,재학 시 여성이었기에 겪어야 하는 고충도 컸다. 재학 시 자신이 원하는 목회 유형에 따라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교육을 받기를 원했고,여성 목회자로서의 비전과 준비 방법 등이 제시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신학과 교과목은 여성을 위한 교양 과목이나,여성 목회자를 위한 교과목이 결여되어 있다. 목회자 부인의 재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신학과나 기타 다른 교육기관에 사모학을 개설해야 한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여성 졸업생들은 목회채용이 불공평하고,교회 행정력이 남성에 의해 주도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종말적 현상으로서의 동성애 연구

        이봉연 삼육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63

        국 몬 초 록 종말적 현상으로서의 동성애에 관한 연구 이 봉 연 신학과 실천신학 전공 삼육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본 연구의 목적은 재림 전에 나타날 동성애에 대하여 알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동성애에 문제와 재림성도들이 가져야 할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개념과 신학적 정립을 세우는데 목적이 있다. 재림 전의 사회현상으로서의 동성애에 대하여 각 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제1장 서론에서는 문제의 진술과 연구의 중요성과 목적, 그리고 연구방법과 및 제한을 통하여 재림 전에 나타날 동성애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동성애가 종말론적 사건임을 진술하였다. 제2장에서는 동성애에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을 살펴보았고, 동성애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역사를 알아보았다. 제3장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대표적인 3가지 원인들을 나누어 학자들이 써놓은 실험내용들과 발표들을 통하여 동성애의 원인들을 살펴보았다. 제4장에서는 동성애에 관한 논의로 성경에 나타난 동성애 문제들과 동성애의 본질에 관한 신학적인 옹호와 반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제5장에서는 동성애를 중심한 재림 전의 현상을 성경에서 노아와 롯의 시대에서 살펴보았으며, 현시대에 나타난 동성애의 다양한 문화와 사회 그리고 교회에 미치는 문제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제6장에서는 신학적 이해를 가지고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평가와 교회들의 입장들을 알아보았으며, 동성애에 목회적 대안으로 동성애에대한 포용과 애해 그리고 교인들의 자세, 치유방안들을 제시하였다. 제7장에서는 본 연구의 결과를 분석하고 요약하여 결론을 맺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를 통하여 재림전의 사회현상인 동성애에 대하여 올바른 신학적 애해와 변화에 준비해야한다. 동성애에 대한 배타적인 이해보다 시대적 상황에 올바르게 대체해 나가는 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동성애에 대한 이해와 사상이 복음을 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마지막 종차점을 향하여 이 지구는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재림성도들은 마지막 남은 백성으로써 예수의 믿음과 거룩한 계명을 가진 자들이다. 영원한 복음을 가진 재림성도들은 주님께서 주신 지상 명령을 쫓아 동성애자들과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재림교회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아울러 동성애에 대한 선교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 수립이 필수하다. 마지막시대에 선교의 중심이 되는 재림교회가 되길 바란다. ABSTRACT Study on Homosexuality as a Eschatological Event Lee, Bong Yeon Major in Practical Theology Department of Theology Graduate School of Theology Sahmyook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know about homosexuality before the Second Coming, homosexual problems influencing the society, and for the Adventists to have right concept and theological thesis about homosexuality. About homosexuality as a pre-advent social event, each chapter deals with the following. In chapter 1, I stated the necessity of study on homosexuality before Second Coming and that homosexuality is an eschatological event through problem statement, importance and purose of the study, and research method and limits. In chapter 2, various terms related with homosexuality and the history of homosexuality is discussed. In chapter 3, I divided three outstanding reasons for homosexuality and looked at them through experiments and presentations of scholars. In chapter 4, I looked at theological defenses and offenses on the nature of homosexuality and homosexuality in Bible. In chapter 5, I put my focus on homosexuality as the pre-advent event viewed through the times of Noah and Lot. Also, I dealt with the problems occurred in today's church, society, and cultures-all influenced by homosexuality. In chapter 6, I looked at theological evaluation and church stands in theological understanding, and suggested acceptance, understanding, attitudes of church members, healing methods, etc. toward homosexuality as pastoral alternative. In chapter 7, I evaluated the result of study and made a conclusion. In short, through this study, we must prepare for right theological understanding and changes in homosexuality as a pre-advent social event. Rather than exclusive understanding of homosexuality, it is necessary to have theological position which takes appropriate actions. If not, wrong knowledge and ideology of homosexuality may become an obstacle in spreading the gospel. The earth is moving toward its end. Living in this world, the Adventists are the remnant who keep the holy commandments and have the faith of Jesus. As Adventists having the everlasting gospel, we must put all our efforts in spreading the good news to all people over all the earth, even homosexuals, according to the Great Commission given by the Lord.

      • 역사에 나타난 한국 재림교회의 종말 사상

        김종각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5 국내석사

        RANK : 249647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 재림교회 종말론의 독특성을 살피고, 역사 가운데 진행된 종말 신학의 발전과정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 발달을 역사고찰을 통해 밝혀 낸 하르낙이나 프롬의 연구를 전제로 진행된 것이다. 한국 잴미교회 종말론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배경과 재림교회 종말론으 성장 배경을 먼저 다루었다. 제2장에서는 전통종교 속에 나타난 종말사관을 통해 한국인의 심성을 형성하고 있는 신앙심을 알아본았다. 그리고 전통종교의 종말론이기독교 종말론 이해에 어떠한 영향을 조었는갓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후에 유입된 세대주의 종말론은 기존의 종말론을 왜곡시키거나 혼란케하여 전천년주의 종말론을 약화시켰다. 또한 세대주의 종말론은 한국에서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시한부 종말론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 한국 교회는 현대 신학적 종말론을 수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현대 신학적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효과도 주었지만 불행하게 예언과 묵시문학의 중요성을 상실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제3장에서는 재림교회 신학 발달의 고찰과 함께 종말론의 독특성을 소개하였다. 2,300 주야, 하늘 성소, 세천사 기별등은 재림교회 종말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역사 과정에서 진전된 이해는 지램교회 종말론의 발달을 경험하게 했다. 제4장에서는 한국 재림교회 종말론의 역사적 발달을 살펴보았다 1904년부터 1910까지의 종말론은 묵시록이 중심이 되었으며 주로 구두로 전달된 기간이었다. 1910-1935년은 선교기로써 복음전도와 함께 재림이 강조되었고, 출판물의 보급과 부흥 장막회는 진전된 종말론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935부터 1945년까지는 일제하에서의 고난기롯써 시대적 불안과 함께 강한 종말신앙을 나타내었다. 1946-1975년은 교회의 중흥기로써 양적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기간동안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는 약화된다. 그리고 재림교회는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파행적 종말 운동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재림교회 종말론을 다시 한번 검토하게 하고, 특별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조하게 된다. 1975년 이후 현대까지의 종말론은 조사 심판, 하늘 성소, 재림의징조, 지연되는 ㅅ간등에 대한 점진적 이해로 말미암아 성숙된 재림 신학을 형성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 재림교회 하늘성소교리 발전사

        남경원 삼육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49647

        본 논문의 목적은 하늘성소교리 발전사를 통해 하늘성소교리의 역사적 의미의 재인식과 하늘성소의 복음성 확립 그리고 하늘성소교리의 올바른 이해의 정립에 있다.1장에서는 문제의 진술, 연구의 목적, 연구의 방법 및 제한, 문헌연구를 진술하였다. 2장에서는 윌리암 밀러의 2300일에 대한 해석을 통해 등장한 밀러주의자들의 재림운동과 1844년 대 실망사건을 배경으로 등장한 하늘성소신학의 형성배경을 진술하였다. 3장에서는 1844년 대 실망사건이후, 대 실망에 대한 반응으로서 단 8:14의 성소정결에 대한 해석적 논쟁을 통해 발견되 하늘성소는 재림교회형성 이전의 초기 개척자들에 의해 문자주의적실재론해석으로 발전되었다. 문자주의적실재론해석은 초기개척자들의 하늘성소의 실재성과 하늘성소의 성서정결사건에 대한 일요일 준수 재림교도들의 공격에 대한 대응이었으며, 하늘성소교리를 체계화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성소교리의 문자주의적실재론해석은 제한 없는 해석적 적용으로 1863년 재림교회 형성이후 율법주의적 성향의 교회를 형성하는 배경을 제공하였다. 4장에서는 1886대부터 1890년까지 재림교회에는 하늘성소신학에 대하여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사이의 논쟁을 하나로 담을 신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5장에서는 로이 애덤스에 대해 진술하였는데, 그는 성소신학에 있어서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조화를 시도하였다. 그는 기능론적실재론해석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한계 없는 적용의 문자주의적실재론해석을 성소의 속죄, 중보, 심판이라는 기능으로 제한하였다. 6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요약하였고, 결론을 제시하였다. This Purpose of thesis is to stand uprightly understanding of doctrine on heavenly sanctuary, establishment of heavenly sanctuary as gospel and new understanding of historical meaning of doctrine on heavenly sanctuary through the history of development of doctrine on heavenly sanctuary in Adventist church. Chapter 1 has presented problem in the direction, purpose of thesis, methodology and limitations of thesis, researching of literature. Chapter 2 presented formative background of theology of heavenly sanctuary to appear in the background of the great disappointment of 1844 and adventist movement as Millerite movement. In chapter 3, after the great disappointment of 1844, the heavenly sanctuary discovered by argument of interpretation about the cleansing of the sanctuary in Daniel 8:14 as reaction of the great disappointment was developed the literally realistic interpretation by early Adventist pioneers. The literally realistic interpretation was that to give important part to organize the doctrine of the sanctuary in Adventist church and to be opposed to against attack of the Sunday's Adventist about the doctrine of real sanctuary and the event of cleansing the sanctuary. But after 1863, gradually Adventist church was trended toward legalism due to unlimited application of the interpretation of the literally the sanctuary. In chapter 4, from 1886 to 1980, there were argument between fundamentalism and evangelicalism in the doctrine of the sanctuary but there was no theology can accept between fundamentalism and evangelicalism. Chapter 5 presented about theology of Roy Adams. He tried harmony the doctrine of the sanctuary of between fundamentalism and evangelicalism and he indicated the functional realistic interpretation. It restricted the literally realistic interpretation of unlimited application in functions of atonement, intercession and judgment on sanctuary. Chapter 6 summarizes the chapters and makes the conclusions.

      • 예수의 사역을 중심으로 본 장애인 선교 연구

        이진선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8 국내석사

        RANK : 249647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장애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며 그들도 구원받아야 할 엄연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식하여 우선적 복음과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 구원하는데 있다. 둘째,가시적 장애인의 육적인 장애와 질병을 치유하고 구원함을 통해 죄로 인해 영적인 장애인 된 인류를 구원하고 회복하려는 예수의 장애인 사역에 나타난 섭리와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다. 셋째,상업적,형식적,행정적으로 기울어 가는 오늘날의 교회를 일깨우고 예수의 참 사랑과 모본을 실천하는데 있다. 넷째,장애인 선교를 통해 장애인 자신은 물론 가족,교회,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놀라운 전도의 효과를 기대하는데 있다. 제1장에서는 문제의 진술,연구의 목적과 중요성,연구의 방법과 제한 등을 기술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았다.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성서적인 이해로 나누었는데 장애인의 현황과 현실을 인식하고 그들을 전인적인 인간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의 성서적인 올바른 장애인관을 가져야 함을 확인하였다. 제3장에서는 예수의 사역에 나타난 장애인 선교의 실제와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예수의 사역에서 사역의 대상 중 상당부분이 장애인임을 볼 수 있다. 예수는 장애인을 찾아갔고,그가 가는 곳에는 장애인이 있었다.예수는 그들을 위해 사역을 감당하였는데,이는 장애인과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이 교회의 선교와 봉사의 대상에 중심이 되어야 함을 말해주며 장애인 선교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예수는 장애인을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서 인식하여 장애인을 치유하고 구원하므로 죄로 인한 영적인 장애를 치유할 수 있음에 대한 표징을 보였으며 자신을 구원의 주체로 나타내었다. 제4장에서는 장애인 선교의 신학적 관계와 현재 기독교 내의 장애인 선교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기독교의 궁극적 목적과 방향에 적합하며 그에 알맞는 계획을 갖춘 장기적인 장애인 선교를 위해 신학적 정립이 필요하다. 현재 기독교내에서 운영되어지는 장애인 선교의 현실 속에서 980년대 이후 장애인 선교를 위한 교회와 기관의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그러나 아직도 장애인 선교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개교회 중심의 구제와 일회성의 형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흡한 자본,그리고 현실과 실제에 맞는 계획과 프로그램의 부재 등으로 효과적인 장애인 선교의 운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5장에서는 예수의 사역을 적용한 장애인 선교 계획을 살펴보았다.회복과 구원에 목적을 둔 예수의 사역을 통해 장애인을 만나고 고치며 그리고 구원에 이르게 하여 새로운 삶을 허락한 원리와 방법을 확인하게 된다. 예수의 사명을 실천하고 모본을 따르는 교회가 예수가 행한 장애인 사역을 보면서 오늘날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지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명으로 인식할 수 있다. 교회의 역할에 있어 장애인을 복음과 선교의 중요한 대상으로 여기고 장애인 선교를 위한 기관의 전문적 부서의 설치,전문적 목회자 양성,그리고 과시적,일회적인 사업이 아닌 엄연한 교회의 사명으로서의 인식의 전환이 절실함을 확인하였다. 또한 변화되어 가는 교회와 사회의 현실에 맞게 장애인들을 영적으로 인도하며 교회와 사회에서 적응하고 그리스도인과 사회인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신앙,교육,복지,재활,문화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계획,그리고 그들의 실질적인 도움과 필요를 채워주는 사업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 都市의 神學的 意味에 관한 硏究 : 바벨론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홍순명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4 국내석사

        RANK : 249647

        성서에 나타난 도시의 신학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하나님의 도시인 예루살렘과 사단의 도시인 바벨론은 그리스도와 사단간의 대쟁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지상의 장소이다. 두 도시사이에 일어나는 대림의 국면들을 정확히 파악함으로 다가올 새 예루살렘의 소망을 확실히 하고 하늘을 대적하는 영적 바벨론의 정체를 밝힐 수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성경에 나타난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성경의 도시 개념의 파악, 바벨론의 역사와 그 신학적 의미의 분석, 예루살렘의 성격과 신학적 의미의 규명, 그리고 두 도시 사이의 대비되는 성격과 대쟁투에서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잡고 연구를 진행하였다. 도시의 신학적 개념에서 영적 바벨론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항하는 흑암의 세력으로 사단의 위가 있는 그의 왕국을 포상하고 있었다. 특히 지상의 바벨론은 여러 도시의모든 악들을 다 소유하므로 도시의 대명사이자 악의 화신으로 평가되었고, 그 도시 시민들은 이러한 부정한 도시 정신에 빠져있었다. 바벨론 계열의 도시 분석에서 애굽의 헬리오폴리스는 우상의 도시로, 이스라엘의 소둠은 간음의 도시로, 페니키아의 두로는 부와 교만의 도시로, 그리스의 아테네는 인간철학의 도시로, 고린도는 음행의 도시로, 마지막으로 로마느 상기의 모든 요소를 갖춘 또 하나의 바벨론 성격의 도시로 밝혀졌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를 표상하는 도시인 예루살렘은 최종적으로 다가 올 새 예루 살렘을 의미하고있지만, 지상의 예루살렘은 바벨론 적 특성고 새 예루살렘의 특성을 공유한 복합적 성격의 도시로 규명되었다. 예루살렘게 도시 분석에서 도피성은 하나님의 보호가 잇는 피난의 장소로, 성소 도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거룩한 장소로, 교회 도시는 그리스도의 몸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구원의 장소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연구를 종합하여 다음 네가지의 결론을 추출하였다. 첫째. 도시는 하나님의 창조(Creation)에 대한 사단의 반창조(Counter-creation)적 작품으로 하나님께 대적하는 지상의 실체이다. 둘째, 바벨론 도시는 사단의 성격을 거의 다 갖춘 악의 표상으로 나타났으며, 그 도시에 거하는 시민들은 이러한 부정적 "도시 정신"을 소유하게된다. 셋째, 예루살렘 도시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성전으로 인하여 거룩한 장소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그의 몸위에 세워진 교회가 구약의 성전을 대신하여 지상의 거룩한 공간이 되었다. 넷째, 대쟁투의 원형적 실체는 그리스도와 사단이며, 표상적 실체는 새 예루살렘과 영적 바벨론, 역사절 실체는 예루살렘 도시와 바벨론 도시, 그리고 종말적 실체는 교회와 도시로 나타났다. 따라서 종말론적 대 쟁투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사단의 도시 사이의 최종적 대결로 종결되어진다고 볼 수 있다.

      • N. T. 라이트와 E. G. 화잇의 칭의론 비교 연구

        김봉근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2015 국내석사

        RANK : 249647

        본 연구의 목적은 기독교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논쟁 주제인 칭의론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톰 라이트와 엘렌 화잇의 칭의론이 어떤 특징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먼저 본고는 칭의론의 역사적 배경을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현대의 칭의론으로 나누어 정리해보았다. 기독교 역사에서 본격적인 칭의론의 확립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을 통해 이뤄지는데, 그의 이해는 중세의 아퀴나스를 거치면서 신학적으로 더욱 정교해지며 이후의 모든 신학 논쟁의 밑바탕이 된다. 루터와 칼뱅을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은 바울식의 ‘전가된 의’ 개념을 새롭게 주장함으로 아우구스티누스적 구원론을 수용하면서도 칭의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외부적 행동과 인간 안에 발생하는 성화의 내부적 과정을 분리함으로써 칭의 개념을 법정적이고 외래적인 개념으로 정립시켰다는 특징을 가진다. 경건주의와 웨슬리의 칭의론은 이러한 경향이 가져온 형식화된 믿음에 대한 반동이었다고 할 수 있는 바, 이들은 다시 인간의 내적 성숙이 칭의의 과정에서 필수적이며, 올바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역동적 성숙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내포할 수 밖에 없음을 성경적으로 증명하고자 하였다. 계몽주의와 칸트로부터 본격화된 현대의 칭의론은 경건주의를 더욱 극단화시켜서 칭의론을 신학의 범주에서 근대적 윤리학의 범주로 끌고 갔다라고 이해할 수 있으며, 슐라이에르마허는 윤리학적 범주와 단절한 채 종교적 감정으로 영역이라는 또 다른 극단으로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알브레히트 리츨은 역사적 칭의 개념을 재조사함으로써 구원론적인 본래적 칭의 개념을 회복시켰다고 할 수 있으며, 칼 바르트는 계몽주의자, 슐라이에르마허, 자유주의 학파와 동일한 신학적 틀 안에서 칭의의 문제를 구원의 인식론적 측면의 문제로 제시한다. 이후 20세기 현대 신학에서 칭의론은 전반적인 퇴조 경향을 보이는데, 샌더스 이후로 바울 신학의 새 관점학파는 1세기 당시의 유댁교가 결코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적 신율주의’였음을 주장하고 종교개혁적 칭의론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N. T. 라이트는 샌더스와 제임스 던을 이어서 새 관점학파의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그가 볼 때 복음은 예언된 메시아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주(主) 되심에 대한 선포가 핵심이며, 칭의는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의 성질을 규정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라이트는 언약적 신율주의에 대한 샌더스의 논의를 큰 틀에서 수용하면서도 칭의의 문제를 더욱 교회론적 문제로 이해하였다. 그렇지만 라이트가 종교개혁자들의 ‘전가된 의’와 법정적 칭의 개념을 거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그보다는 그러한 개념들이 성경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법정적 개념은 칭의에 대한 다양한 비유적 개념의 하나에 불과하며, ‘전가된 의’의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라는 관점에서 수용되어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법정적 칭의 개념과 언약적 칭의 개념은 1세기 당시 유대교적 상황에서 교회론적 개념으로 통합되며,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던 갈라디아서와 로마서 모두에서 교회론적 적용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본다. 특별히 라이트는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통해서 드러났으며,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으로 기독론적 개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라이트는 성경이 분명히 여러 곳에서 행위에 근거한 최후 심판을 말하고 있음에 관하여 그는 ‘초기의 칭의’와 ‘종말적 칭의’를 구분하는데, 바울의 빌립보서 3장의 표현들 속에서 초기의 칭의가 종말적 구원의 절대적 근거로 작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보다는 로마서 8장의 성령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이 초기의 칭의가 종말적 칭의의 보증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신자들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역사하고 열매 맺는 성령을 통하여 가능함을 제시하였다. 한편 엘렌 G. 화잇은 재림교회 초기, 곧 1888년 이전에 율법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것으로 비쳐지지만 결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강조하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1888년 미니애폴리스 총회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강력한 강조와 반복적 선포를 가져오는 분기점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녀의 칭의론은 루터적 개념에서 종교개혁의 칭의론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칼뱅의 후예들을 통해 정립된 결정론적 예정론의 개념을 거부하며, 웨슬리안의 전통에서 인간의 선택력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칭의와 인간의 자유의지론에 있어서 루터와 칼뱅의 이해보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웨슬리적 이해를 수용한다. 결국 엘렌 G. 화잇은 자신만의 가장 성경적인 칭의론의 이해를 어떤 분파나 신학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대신에 성경적 기준에 의거한 기독교 전통의 예리한 선별적 수용을 통해서 정립해간다. 톰 라이트와 엘렌 화잇의 칭의론을 비교해보면, 언약론적이고 교회론적 이해를 강조하는 라이트와 종교개혁의 전통적인 구원론적 관점을 수용하는 엘렌 화잇은 복음과 칭의의 개념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이 인간의 최소한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칭의와 성화가 이분법적 대립의 관점이 아닌 통합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필요성을 주장한 점에서는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율법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라이트는 안식일과 음식 문제가 1세기 당시에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보수하는 상징적 표지에 불과하다고 봄으로서, 여전히 도덕법 안에 귀결되는 안식일 문제와 신자들의 건강 문제에 관한 현실적 필요와 절제 문제와 연결되는 실제적인 죄의 문제로 인식되는 음식에 관한 관점에 있어서 전혀 상반된 이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후 심판과 종말론적 칭의에 있어서 칭의와 성화의 통합적 관점에서 행함의 열매가 성경적 표현대로 최후 심판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다만 안식일 계명에 관한 종말론적 의미를 포함한 율법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톰 라이트와 엘렌 화잇의 칭의론은 역사적 전통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칭의와 성화의 통합적 관점을 제시하려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Ellen G. Wite과 John Wesley의 성화사상 비교연구

        임정배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200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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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엘렌 G.화잇과 존 웨슬리의 성화사상을 비교 연구하였다.존 웨슬리(1703-1791)는 18세기 영국의 종교 부흥 운동의 지도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사역은 그의 부흥활동에 함께 하는 무리들을 향한 것이었다. 그가 인도한 운동은 감리교회를 조직하게 되었다.그의 설교와 저술을 통하여 그는 성화 사상을 매우 강조하였고,그 봉사는 그리스도인 신학 사상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엘렌 G.화잇(1827-1915)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초기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녀는 71년 동안의 공적 직업적 봉사를 통하여 교회의 상담가로 봉사하였으며,다양한 주제로 수많은 책들을 저술하였다. 수많은 군중에게 했던 그녀의 설교와 권면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발전 방향을 가르쳐 지시해 주는 것이었다. 제1장은 문제의 진술,연구의 목적과 중요성,그리고 연구의 방법과 제한을 서술한다. 제2장은 존 웨슬리의 성화사상을 규명한다. 즉 성화의 본질,특성,수단들과 방법들이 어떤 의미가 있음을 규명한다. 우리는 웨슬리의 회개경험을 주목한다. 그리고 비록 사람이 점진적 성화 가운데 있을지라도 전적인 성화의 경험이 죽음 전과 심지어 죽음 순간에 주어질 수 있다고 웨슬리가 주장함을 알게 된다. 제3장에서 엘렌 G. 화잇의 성화 사상을 더욱 자세 소개하기 위하여 연구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참된 성화가 점점 더 성화 되어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랑이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게 하는 기초로서의 품성변화가 화잇의 성화사상의 핵심임을 보게 된다. 제4장에서 우리는 각 소제목에 대한 웨슬리와 화잇의 일치점과 독특성을 파악하게 된다. 성화의 근원과 목적 그리고 수단에서는 두 사람이 대체로 일치하지만,화잇은 웨슬리의 순간적 성화경험을 부정하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제5장은 요약과 결론 및 제언으로 결론을 맺는다. 비교하여 보면 화잇의 성화사상은 웨슬리의 견해와 통합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지만,어떤 부분에서는 더 강하게 또는 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모세 오경에 나타난 십일조 사상에 관한 연구

        오재호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 199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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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목적은 십일조에 관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모세 오경을 통하여, 십일조 제도의 배경과 그 의미를 파악하여, 십일조에 대한 실천적 의무를 성서적 기별을 통해 확인하는 데 있다. 제 1장은 문제의 진술, 연구의 목적과 중요성, 연구의 방법과 제한, 그리고 연구사 등을 진술하고 있다. 제 2장에서는 십일조 제도의 기원을 살펴보았다. "십일조"에 나타난 성서 원어의 의미와, 고대 근동 지방의 문화 속에 널리 퍼져 있던 십일조 제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고대 근동 지방의 십일조 제도는 정치적, 경제적 목적이, 이스라엘의 십일조 제도는 신학적, 종교적 목적이 강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제 3장에서는 모세 오경에 나타난 십일조의 신학적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십일조가 언급된 본문의 배경과 해석, 그리고 구조를 살펴본 다음, 각 본문에 나타난 십일조의 의미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모세 오경에 기록된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라는 이중의 신학적 의미를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제 4장에서는 십일조 제도에 나타난 신학적 논쟁을 다루었는데, 모세 오경에 나타난 십일조의 종류와 "십일조"와 "첫 수확" 헌물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성경 내외적 자료들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제 5장에서는 본 연구의 결과들을 요약하고 종합하였다. 결론적으로, 모세 오경은 십일조에 관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는데, 그 신학적인 의미들을 종합해보면, "제 1 십일조"는 사람이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수직적인 관계를 위하여, "제 2 십일조"는 사람을 사랑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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