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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사렛대학교 교목사역에 대한 인식도 및 호응도에 관한 조사연구

        안은희 나사렛대학교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50703

        미션 스쿨인 나사렛대학교는 기독교 교육의 정신에 세속 교육의 학문을 겸비하여 발전하여 왔다. 처음에 1954년 "한국나사렛신학교"로 시작하여 지금의 종합대학교로 발전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여 온 것이다. 나사렛대학교는 교단이나 교회에서 후원하여 선교의 목적으로 세워진 기독교학교가 아닌 1954년 9월 14일에 오웬스(Donald D. Owens)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미션 스쿨(Mission School)이다. 초창기 "한국나사렛신학교" 때는 나사렛 교단의 목회자 양성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하였다. 거듭되는 발전 속에서 지금 은 종합대학교의 모습인 "나사렛대학교'가 되어 옛날의 신학 위주인 교육에서 폭넓은 학문과 전문화된 세속 교육까지 겸하여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대학교는 기독교적인 것'과 '학교적인 것'의 초월적, 궁극적 근거와 목적을 찾는데서 시작한다. 스승과 학생의 관계가 성경적인 그리스도와 제자처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아니라면, 또한 학교 행정체계와 학교운영의 원리가 세속적인 효율성과 관료성 위주라면 기독교 대학교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독교대학교이라는 특성상 나사렛대학교는 교육 이념이 "진리· 경건· 사랑"이며 교육 목표는 "진리 탐구" "경건 생활" "사랑 실천, 헌신과 봉사 생활, 사회 정의 실천, 인류 복지 구현"이다. 이 중에서 교목실은 "경건 생활"을 감당하고 있고 학교의 건학 이념에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교목실은 크게 세 가지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교내 각 종 학생 정규예배 및 경건회에 관련된 사항을 담당하고, 둘째 학생 예배, 교직원 예배, 학생 경건 생활을 주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학생, 교직원의 영적인 생활을 담당하며, 셋째 나아가 한국 교회와 국가의 일꾼으로서 헌신봉사 및 지도자로서 자질을 함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두를 책임 관리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진 교목직은 예언자적, 제사장적, 왕적, 목회자적, (교사적, 상담자적) 기능을 가진다. 나사렛대학교의 역사 속에서 나사렛대학교 교목실은 학교의 실정에 맞게 변천하여 왔다. 교목실기관은 처음부터 체계적이지 않게 존재하여 왔다. 그러다가 1997년부터 생활관과 분리되면서 드디어 행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한 기관인 교목실에 대한 기록은 1997년부터 있으며 그 전의 뿌리는 찾기 힘들지만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채플과 부흥회가 주요 업무로 생활관까지 관리하였다고 한다. 2002년도 나사렛대학교 교목실의 조직은 강수명 교목실장과 이계관 교목이 있고, 그 아래에 1부 대학을 실무로 담당하는 오장환전도사 외에 12명의 조교가 있고 2부 대학의 실무자로 장희국전도사 외에 3명이 있다. 2002년도 나사렛대학교 교목실의 역할은 2002 나사렛대학교 요람에서 크게 9가지로 말한다. ① 교목실장 직인의 간수. ② 교직원 예배 주관과 교직원 신앙지도. ③ 교내의 선교활동과 종교교육에 관한 업무. ④ 학생 신앙상담(지도)과 학생 부흥회에 관한 업무 그리고, 학교 채플 관리. ⑤ 대학 성가대 운영과 신앙써클 육성지도. ⑥ 학생 재학기간 중 봉사교회 배정 및 지도 업무. ⑦ 대학의 각종 종교의식 주관. ⑧ 지역교화와의 관련 업무. ⑨ 기타 위 각 호에 부수되는 사항. 이 중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요 업무인 목요 예배와 부흥회 그리고, 비젼 아카데미(Vision academy)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이것을 주제로 하여 나사렛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교목실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충으로 연구를 하였다. 예배 대상자는 여자와 기독교인이 반 이상인 2, 3, 4학년이 주를 이뤘다. 비젼 아카데미에서 리더자는 27명의 신학대학원생이었고, 학생들은 비 그리스도 1학년생들이었다. 그 연구 결과에서 먼저 목요예배이다. 학생들은 1시간을 기준으로 현재 목요일에 드리고 있는 예배 시간과 요일에 대부분 만족하였다. 채플 순서에서는 찬양 (찬양팀, 성가대 및 특별찬양 등)을 좋아하였고, 대체로 잘 따라 하는 편이었다. 예배 순서에도 만족도가 높았다. 예배의 행사가 많지만 행사에 대한 호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배에 대한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그리고 교목실의 친절도나 출석체크에 대한 정확성 등에는 인식이 좋은 편이었으나 관심 없는 학생들도 있었다. 예배에 대해 다시 말하면 학생들의 삶에 필요성이나 도움 받고 있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많지만 예배를 통해 깨달은 것을 삶 가운데 실천하는 학생들은 적었다. 학생들은 시설이나 협소한 장소, 비좁은 계단 등의 환경에 불만이 많았다. 또한 설교강사에도 불만이 많았다. 학생들의 정서나 특성을 잘 활용한 설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설교강사 선정에 고려되었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부흥회이다. 학생들은 부흥회 가간을 5회 내 · 외 정도를 선호 하였으며, 장소에 대한 만족도는 채플과 같은 장소에서 드리는데 부흥회 때는 채플 때보다 인원이 더 많아져 아주 좋지 않게 나왔다. 장소 개선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부흥회의 전체적 프로그램의 만족도는 학생마다 다양한 응답이 나왔다. 먼저, 부흥회 순서에서 주를 이루는 아주 중요 설교(30쪽 <표.13> 참조)이다. 강좌 같은 설교나 참여가 없는 내용으로 된 부흥회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지루해하고 반응이 좋지 않게 다양한 응답이 나온 것이라 본다. 더 자세히 말하면, 부흥회의 강사진들에 대한 만족도 천차만별로 나왔고, 학생들의 삶이나 생활 여러 부분에 도움은 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그렇게 많이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결과가 나왔다. 학교나 교목실에서 교목사역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찾기 힘들다며 이젠 설문조사에 대한 감각이나 생각이 무덤덤하게 되어진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부흥회를 통해 학생들은 예수님과 교회 및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인 편이었으나 잘 모른다는 학생도 27.0%나 되었다. 이런 결과로 교목실에서는 세속화와 정보화된 시대에 영적인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는 예배에 대한 연구와 전문성과 세분화 된 업무와 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비젼 아카데미이다. 학생과 리더자들은 1시간 이내에 하는 것을 선호하며 학생들의 수는 6명 이하를 좋아하며, 학생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리더자들은 공과의 주제를 기독교의 진리로 삼아 전했지만 학생들은 신앙관보다는 대인관계에 더 많은 도움을 받았고, 비젼이나 적성에 대해 리더자와 상담을 많이 한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리더자에게도 리더쉽 등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결과가 나왔다. 힘든 점은 학생들과 리더자가 서로 시간이나 요일을 맞추어 만나는 것이 높게 나왔다. 학생들은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학생이 8.6%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교재에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크게 되지 못하게 나왔다. 공과의 질이나 다양한 정보제공을 주기 위해서라도 잦은 리더자들에 대한 교육 및 모임으로 교목실에서는 학생들과 리더자들을 지도하고 관리하는데 체계적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재에 대한 연구가 교목실과 리더자들에게 필요하다. 또한 모든 클레스와 자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 및 지원을 리더자나 학생들은 원하는 것으로 나왔다. 비젼 아카데미의 결과나 효과는 좋은 편이며 학생들도 호응이나 인식이 좋았다.

      • 여성 해방신학의 비판적 성서 해석에 관한 연구 : Elisabeth Schussler Fiorenza 중심으로

        안후남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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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훼미니스트 역사 재건은 새로운 자료의 발굴을 필요로 하기보다는 남성 “승리자들”의 기록에서부터의 재해석 작업이며 바로 가부장적 크리스챤 과거에 있어서의 선배자매들의 고난과 희망, 그들의 억압의 역사와 망각된 여성의 역사가 바로 오늘의 우리 여성의 유산이며 힘이라는 적극적인 시도를 의미한다. 크리스챤 여성들이 행하고 생각한 것을 신약성서가 거의 우리에게 전해 주지 않는 그들의 역사를 재건하기 위해서 ‘역사적 상상력의 증진’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물론 피오렌자의 이런 주장은 그의 훼미니스트 신학적 재건이 과도하게 추론적이며 주관적이라는 비판의 여지를 가진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도는 주도 면밀하다. 예컨대 초기 크리스챤 역사의 훼미니스트 신학적 재건을 위해서 이미 남성들에 의해 시도된 많은 연구들을 원용하면서도 비판하는데 특히 초기 크리스챤 역사의 사회학적 연구를 시도한 G. Theissen, R. Scroggs, John G. Gager, W. Stegemann등의 남성 중심적 신학적 모델과 가부장적 사회학적 모델들은 모두 교회의 가부장화 과정이 역사적으로 불가피 했다는 것을 전제로 초대 기독교 연구들에 있어 핵심적 분석에 사용된 개념들- 비가족적, 반가족적 삶의 스타일, 가부장주의, 사랑의 가부장주의 등등-에 관한 비판적 조직적 숙고가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오렌자에 의하면 점진적 가부장화의 역사적·사회학적 해석이 신학적 정당화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초대 기독교의 가부장화가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을 정도로 여성 크리스챤들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이다. 피오렌자는 초대 기독교에 있어서의 탁월한 여성지도자들의 공헌이 간과될 수 없으며 초기 크리스챤 선교 운동과 관계해서 가정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오늘의 대형화되어 가는 교회는 초기 기독교에서의 가정 교회들이 증언한 새로운 종말론적 공동체와 인류 평등성에 대한 비젼을 상실하고 있다. 초기 크리스챤 선교 운동과 가정 교회들의 종말론적 비젼이 그러한 오늘의 제도화된 교회들을 시정해 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준다. 비록 초기부터 기독교의 가부장화가 예수와 그의 운동의 평등주의적 비젼을 제압하고 말았지만 “평등한 자의 제자직”이라는 패러다임은 참된 제자직의 모형으로서, 동시에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교회 구조의 대안으로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것이다. 또 “여성들의 교회”라는 주제를 피오렌자는 여성들의 종교적 공동체들에 대한 전거로서 사용한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여성들의 종교적 공동체들을 폐기했으며 반면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현대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 여성 공동체들에 대한 가부장적 교회 구조를 강화하여 남성 성직자들의 통제를 강화했다고 비판하면서 여성들의 에클레시아의 타당성을 논증해간다. 1. 여성해방신학의 비판적 성서해석의 공헌점 첫째, 성서를 그리스도교 종교의 유산으로 오늘의 현장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즉 피오렌자가 성서를 ‘신화적 원형’과 ‘역사적 원형’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구분함으로써, 성서의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리스도교 종교권 안의 풍토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두 개념상의 구분과 그것의 차이를 통하여 현재의 상황에서 성서에 대한 비판적 평가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서 해석에 있어서 ‘현재’라는 ‘상황’의 중요성이 성서의 권위 위에 놓일 수 있는 개념상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피오렌자의 여성 해방적 비판적 성서 해석학은 한국 여성들의 경험을 가지고 성서해석을 할 수 있는 근거와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신학은 각자의 경험의 다양성으로 인해 다양한 신학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여성 신학은 서구적 성서해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갖게 된다. 특히 피오렌자의 성서 해석학으로 재건된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 있어서의 여성의 역사는 현재의 여성 해방운동에 힘이 될 수 있는 과거의 역사를 재건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둘째, 여성신학이 반 학문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여성신학은 여성의 영적·종교적 경험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임으로써 새로운 이론의 준거의 틀이나 접근의 정의를 내리려고 한다. 여성해방주의 이론가들은 기존 신학의 이성 중심성을 반대한다. 그 동안 신학을 포함한 학문들이 이성에 비해 몸을, 경험을, 감정을, 객관적이 못하다는 이유로 무시해 왔고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해방주의자들은 이 영역을 여성 해방적 학문에 도입하고 적용함으로 전통 신학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교회는 성서를 역사적 비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원형’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 불변의 무시간적 진리의 원천인 ‘신화적 원형’으로서 성서를 이해하고 있음을 볼 때 여성신학의 성서해석 방법론의 한국적 상황에서의 적용과 확산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셋째, 여성신학자들의 여성 해방을 위한 성서해석에 관한 학문적 노력이 기존의 남성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존 캅(John Cobb)은 여성신학이 신학자의 과제와 역할에 대한 자신의 사고를 변화시키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면서 신학의 미래에 여성신학은 가장 의미 심장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는 여성신학이 기독교 신학의 미래를 위해서 현대의 가장 중요한 소리이며 만약 교회가 여성 신학이 주는 이러한 새로운 계시와 지혜를 외면한다면 교회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버드대 교수였으며 미국종교학회 회장을 지낸 고든 카우프만은 일찍이 Vallerie Saiving의 글인 “인간의 상황”을 읽고 나서, 20세기의 주도적인 신학자들에 의해 형성된 죄와 구원의 개념이 남성의 경험만을 반영한 것임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후에 그는 성차별의 신학적 중요성을 인식했으며 그의 강의 시간에 성(Gender)의 문제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기존의 남성의 경험을 토대로 한 성서해석에 여성의 경험을 통한 시각을 더하므로 성서이해와 삶의 정황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폭넓은 이해를 가능케 하였다. 네째, 여성신학의 커다란 공헌중의 하나는 세계절반인 여성들의 어두운 구석에서 삶의 중심자리에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새로운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여성신학을 접한 여신학도들의 고백가운데, “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거듭났던 자신이 이제 여성 신학적 통찰과 신학 방법론에 의해 여성으로 거듭났다”고 고백한다. 이는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신학이 이와 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여성 신학이 전개되고 있는 것 못지 않게 반대의 소리 또한 높다. 근본주의 신학 계열에 속하는 이들은 참 기독교인이라면 훼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한다. 한국교회와 많은 신학자들이 여성신학이 한국교회와 신학을 파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교회의 강단에서는 여성신학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부정적인 결론을 가지고 선포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여성신학의 다양한 시도들을 전통적인 신앙에 위협적인 요소로 느끼며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2. 비판적 고찰과 앞으로의 방향 피오렌자가 다른 신학자들보다 성서의 권위에 대해서 급진적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의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그녀가 조직신학자가 아니라 성서 비평과 역사 비평에 힘 쏟는 성서학자라는 점이다. 둘째, 그녀가 개신교가 아닌 캐톨릭에 소속해 있다는 점이다. 교회가 성서를 창조하고 그것의 진정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캐톨릭적 인식이 그녀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피오렌자는 성서신앙을 선별하는 권위를 성서 텍스트에게서가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해방투쟁의 흔적을 보이고 있는 신앙공동체들에 부여한다. 따라서 여성 해방적 신앙 공동체가, 혹은 여성-교회가 성서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한 비판적 주석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오렌자에게 올바른 해석학의 권위적 규범이 되는 것은 과거의 텍스트들이나 오늘날의 가부장적 ‘ 교도권(magisteria)’이 아닌 여성교회이다. 그러나 여성교회와 관련되는 피오렌자의 이런 주장들에 제기된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첫째, 피오렌자는 모든 남성 중심의 텍스트들이 실제로는 여성들의 현존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방법론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형제들”만 언급되었을 때, 이것이 남·녀 모두를 의미한다고 추측하게 된다. 이에 반해서 필리스 버드(Phyllis Bird)와 같은 구약성서 학자는 히브리 성서에서는 그 반대의 법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남성들이 언급되었을 때에는 여성들이 부재했음을 추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남성 중심적 텍스트 안에서 여성들을 읽어내는 일이 아니라 남성들로 한정된 제의나 연구에 부재했다면 여성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버드는 그들이 다른 종류의 종교적 활동에 참여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를 기념하여(In Memory of Her)」에 관한 심포지움에서 플라스코(Judith Plaskow)는 피오렌자가 역사의 중심에서 여성을 발견하기 위한 선험적인 전제를 가지고 성서에 접근한다고 비판한다. 몇 개의 구약성서의 구절들을 언급하면서, 플라스코는 결론적으로 “ 그러나 아마도 그녀가 틀렸으며 아마도 우리는 거기에 없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물론 피오렌자는 특별히 신약성서를 다루고 있으며 동일한 유형의 탐구가 구약성서에도 필연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스코의 지적은 탐구 영역의 분명한 상이성을 고려하더라도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즉 피오렌자가 여성들에게 그들이 실제로 소유했던 것보다 더 많은 힘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질문하고 있다. 그녀는 기독교 기원에 대한 피오렌자의 페미니즘적 재건이 그 특수한 시간과 장소에서의 여성의 실제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이 될 수 있지는 않는가를 묻는다. 이런 질문들에 피오렌자는 상이한 본문들을 연관 지우며 그것들을 교정하고 그녀의 결론을 위한 견고한 논증을 세운다. 누비이불처럼 남아 있는 역사적 정보의 조각들을 짜 맞추어 통합된 전체적인 상을 구성하려는 그녀의 시도는 탁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답되어져야 할 질문은 동등성의 공동체가 참으로 존재했음을 과연 확증하고 재건해 낼 수 있는가? 또 그것이 신약성서의 문을 여는 최상의 열쇠인가 아니면 다른 정당한 그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피오렌자는 성서 본문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해방을 위한 투쟁 가운데 있는 여성의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경전 안의 경전”이라는 접근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직도 원형적인 성서의 패러다임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가 단순히 무조건적으로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그녀의 견해는 정당하다. 따라서 성서의 본문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며 복된 소식의 선포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판단하기 위한 다른 그 무엇이 성서 본문과 나란히 놓여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험을 경전으로 갖는다는 것은 다음의 문제들을 내포한다. 즉 새로운 경전이 오직 여성의 경험에만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른 주변화된 집단들을 발견적 교육(heuristic)모델 안으로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경전은 여성의 투쟁에 적용되어져야 한다고 해도 이것이 오직 여성만이 진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규범이 현실화되려면 넓은 의미의 해방을 위한 일반적인 규범과 특수한 규범사이의 구분설정이 정당하며 필요하다. 셋째, 경험이라는 새 경전은 사실상 독특한 여성의 경험이라는 일반화된 경험이 없다. 즉 흑인 여성, 가난한 여성, 인디안 여성, 아시아 여성, 한국 여성이라는 구체적인 여성의 경험이 성서해석을 위해 존재 할 뿐이다. 따라서 다양한 여성의 해방과 투쟁을 위한 여러 개의 경전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어디서부터 이러한 해방과 투쟁을 위한 실천적 윤리의 보편적 근거를 삼을 수 있을 것인가? 넷째, 경전을 경전밖에 위치시킴으로서 피오렌자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정당화시킬 계시된 진리의 권위적인 근거를 갖지 못한다. 물론 그녀가 말하는 “동등한 사도성에 기초한 대안적인 역사적 공동체”가 여성신학을 위한 새로운 경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전이 필연적으로 경전밖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피오렌자는 성서를 역사적 모형으로 보는 자신의 방법론적 형식적 원리와는 달리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평등한 제자직의 규범적인 본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어느 정도 성서의 원형으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인정함으로 원형과 모형을 구분하고 비판했던 자기 모순에 빠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는 “경전 안의 경전”의 원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성서자체를 단지 여성의 경험으로부터 만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패러다임적 현실로부터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로즈마리 류터의 견해가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성 해방적·비판적 해석학이 오늘날 여성 해방신학과 연구에 중요한 기틀이며 이것의 기여가 우리들에게 간과 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녀의 해석학적 문제는 적어도 신학의 근본적인 문제, 즉 여성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와 그리스도인이 훼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여성들의 교회는 교회의 충만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고 배타적 남성-위계 질서적 집회들이 그 충만성을 가진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여성교회는 그 자체적 구분의 모호성과 오히려 타 집단과의 이분적 구분으로 더 배타적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즉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들의 에클레시아로서 모일 때마다 “전도된 성 차별주의”라는 비난을 한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가부장적 억압과 권력의 문제들을 충분히 직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비난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여성들의 교회라는 범주가 또 하나의 성 차별주의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자체의 반성과 연구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여성들의 종교적 공동체들은 언제나 카톨릭 전통내에서 존재해 왔고 지역 교회 구조들이 가부장적으로 또는 위계 질서적으로 되자마자 여성들을 종속적인 역할들로 제쳐놓아야 했거나 혹은 교회 직분에서 전적으로 배제해야 했다. 여성들의 이 종교적 공동체들을 폐지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은 가부장적 교회 구조들을 강화시켰으며 현대에는 로마 카톨릭 여성 공동체의 남성 성직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평신도 여성들과 성직자 여성들의 가부장적 구조들, 가부장적 계보들을 따라서 우리를 깊숙히 분열시키는 그러한 구조들을 거부함으로 여성들의 공동체들을 여성들의 에클레시아로 변혁시키려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여섯째, 피오렌자의 비판적 성서해석 방법이 초대 기독교 여성들의 유산을 발견하고 제 3세계 여성들의 자기 경험에서 성서를 해석할 새로운 장을 열어 놓았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의 유산 발견만으로 과연 행복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이다. 즉 몇 세기 후의 우리 후배들도 이 시대의 유산을 찾겠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겠는가? 피오렌자의 비판적 성서해석 방법은 과거의 유산은 재건했을지 몰라도 현재, 오늘의 여성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혁의 방향과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즉 여성 해방적·비판적 해석학으로 건져냈다고 아우성치는 유산이 오늘날의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해 개혁을 요구할 수도 변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돌 대신 떡을 주겠다는 피오렌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단순히 가부장적인 성서를 비판적 의심의 해석학으로 보고 역사속에 파묻힌 선배 여성들의 업적을 걸러내는, 즉 역사를 선별하는 거름종이만을 만들었다고 역설하기에는 너무 많은 노력과 지면이 할애된 것은 아닌가? 피오렌자의 성서 해석은 절반의 성공이다. 건진 유산으로 건설적으로 설계할 미래와 이제는 단순히 성의 구분으로 이분된 신학이 아닌 하나됨을 모색한 신학을 제시했어야 했다. 이제 여성 신학은 단순히 여성들의 신학만이 아니요, 기존 신학의 동반자나 어느 한 파트도 아닌 기존의 신학에 오버랩 되어 자체의 체질을 개선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너와 내가 아닌, 남자와 여자도 아닌, 우리와 모두가 하는 신학이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보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우리의 사회적·종교적 위치, 자기가 생활하고 있는 장에서의 실제적 입장이나 활동이라는 컨텍스트, 이것에 의하여 우리들이 보는 세계는 달라진다. 그리고 이렇게 본 세계의 현실을 우리는 자기의 언어로 구축한다. 따라서 이렇게 축적된 지식, 현실 구축은 항상 비판을 위해 열려 있어야 한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 경험과 전통적 학문 사이에 있는 모순을 비판적으로 명백히 하고 이것을 건설적, 창조적, 긴장관계 안에 지속시켜야 한다. 이것이 지향하는 것은 엘리트 남성만의 관점과 언어로 구성되는 신학이 아니다. 역사 안에서 억압받고 식민지화했던 다양한 ‘타자’들의 경험이나 목소리를 배제하거나 침묵시키는 일이 없도록, 다양한 역사적 배경이나 아픔이나 열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크게 ‘포함’하려는 혼성(混聲), 다성(多聲)의 신학,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열려진 신학을 구성해 가는 입장이다. 해방신학이나 여성신학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다른 경험과 입장에서 ‘행동하는 신학’이므로 쉽게 의견일치가 얻어지는 신학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성급하게 같은 의견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한 지적·신학적 ‘무지개의 연대’를 어떻게 풍부하게 형성해 갈 수 있는가를 함께 모색해 가야 한다.

      • 발달장애인의 말씀-성만찬 예전 형식의 시도

        김태관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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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발달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참여가 가능한 예전형식의 예배신학적 가능성과 실제적 실현방법을 다룬다. 특히 전통적 예전 구조인 말씀-성만찬 예전에 초점을 두고 발달장애인들의 관점에서 이를 이해하려 한다. 현대교회는 장애인이 없는 교회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장애에 대한 교회의 편견은 특히 발달장애인들에 대해 심한데 그들의 구원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교회전통 속에 흘러온 탓도 있다. 다행히 근자에 많은 교회들이 장애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주로 교회학교 교육에 치중하고 있을 뿐 발달장애인의 예배참여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여전히 미비하다. 이것은 특히 발달장애인에 관한 신학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예배학적인 관점에서 발달장애인의 문제와 해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이려 한다. 발달장애인에게 예배란 무엇이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함으로 발달장애인을 더 깊이 이해할 길을 찾고 또 기독교공동체의 중심활동인 예배에 발달장애인을 실질적으로 참여시킴으로 발달장애인의 소외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을 찾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 기존의 교육학적 일변도의 노력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을 포함하는 예배를 통해 기독교 예배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는 예배학적 기여 역시 도모한다. 사실 기존의 교육적인 연구에서도 예전이 중요한 요소로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에서는 설교중심의 예전 속에서 감각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발달장애인의 신앙교육을 도모하는 일에 집중하여 발달장애인의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배신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에 소홀하였다. 특히 발달장애인과 성만찬 예배의 관계에 관심을 주지 못해왔다. 본고는 발달장애인에게 설교중심 예전보다 성만찬중심 예전이 더 큰 의의가 있음에 주목한다. 본고의 핵심적 논제는 발달장애인을 장애인제사장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리스도의 몸의 가장 약하지만 가장 귀한 지체이다. 본고는 발달장애인의 현대의학과 교육적인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의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발달장애인을 성서적, 교리적, 교회사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검토한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예배참여 가능성을 예배신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실제적 모델을 제시한다.

      • 한국교회의 예배의식에 대한 역사적 고찰

        전재일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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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예배의 정립이 시급하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건물은 있으나 성경적인 참된 예배를 회복해가는 교회가 적음을 보게 된다. 먼저 전반적인 예배의식에 대한 세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 첫째, 예배는 최고의 가치를 지나신 하나님께 존경과 순종, 그리고 경배하는 마음으로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으로써 신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며, 하나님 중심적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성령이 함께하는 예배이다. 이 예배는 우리의 개별적인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전체의 공동체적 행위이다. 둘째, 예배의식의 성서적이고 역사적 변천을 살펴보았다. 기독교 예배의 기초 원형인 유대교의 회당예배에서 A.D.제1세기 말부터 한 고정된 예배의식의 틈에 의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예배의식을 살펴보면 첫째, 쉐마의 낭독과 둘째, 18개의 기도문 낭송이다. 셋째, 성서본문의 낭독과 통역이다. 넷째, 설교와 교훈이다. 다섯째, 축도의 순서이다. 이어서 초대교회의 예배의식은 성막예배, 성전예배, 회당예배의 전통안에서 이루어져서 말씀의 예전과 성만찬 예전으로 구성되어 예배의식을 갖추었다. 이것이 중세교회의 예배의식에 영향을 주어 동방 정교회와 서방 로마 카돌릭교회에서는 보다 발전된 예배의식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개혁자들은 의식과 형식 중심인 성만찬 예전은 1년에 몇차례만 정해놓고 시행하였으며, 말씀중심인 말씀의 예전에만 온힘을 쏟았다. 종교개혁 이후의 예배의식은 복잡한 의식보다는 저마다 간단한 예배의식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셋째, 한국교회의 예배의식을 살펴보면 한국교회들은 루터교회를 제오ㅚ한 대부분의 교회들이 말씀의 예전에만 치우지는 예배의식을 가지고 있고, 성만찬은 일년에 몇 차례 실시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제 말씀의 예전과 성만찬 예전을 조화있게 분배하여 균형있고 바람직한 예배의식 가운데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 가정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의 역활

        김철환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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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까지 심각한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산업화 도시화 된 현대사회의 심각한 가정해체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아왔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총체적 위기와 가정해체를 막기 위해 가정의 기능을 강화하고 그 의미회복을 위하여 교회는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일해야만 한다. 지금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우리 사회의 정신문화 개혁은 그렇게 추구하던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첨단 과학기술 산업화보다 더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정신문화 개혁은 사회의 교육기관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하며, 그리고 이것도 셀(Charles M. Sell)의 주장처럼 결국 교회만이 가정의 질적 향상에 구체적이며, 근본적이며, 항구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사역(Family Ministry)”이란 단순히 교회의 일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목적과 선교적 본질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 사회 가운데 가정들로 구성된 유일한 기관은 교회뿐이다. 이제 교회도 가정이 되어가는 대로 교회도 되어 가는 형국을 맞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가정회복을 위한 가정사역이 교회의 구색을 갖추는 하나의 기관으로서의 장식물이 아니라, 교회의 가장 소중한 사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가정회복과 함께 교회의 진정한 성장과 성숙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온 가정사역의 과제가 교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회지도자들이 무엇보다 가정을 중심으로 한 목회가 필요함을 절감하는 가운데 정책적으로 시행해 가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 지도자들의 목회자 재교육에서 가정사역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루어야 하며, 예비 목회자들을 위하여서는 신학교 교육에서 이러한 가정사역에 대한 비젼과 소명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 20-30년 동안에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화. 도시화는 급격한 사회변동을 일으켰으며 이는 외형적, 내면적으로 가정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고, 이제 가정은 이 사회의 변화와 구조적 모순이 가장 많이 집약된 곳으로 주목을 받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의 의미와 현대사회에서의 가정이 처한 위기와 그 대책 등, 신학교에서 구체적으로 신학적 가정론을 정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전체목회자의 의식 전환과 아울러 이러한 가정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해 가기 위하여 한국교회는 양질의 전문 사역자를 양성해 내는 데 연합된 힘을 창출해 내야한다. 가정 사역을 위한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교인들이 이에 참여한다고 갑자기 우리의 가정이 변화한다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 성경말씀 같은 지식조차도 항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신학이 있다지만 실천이 없는 교회가 있듯이, 올바른 교리가 언제나 올바른 삶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올바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약4:17). 상실되어가는 가정을 회복하기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명백하고 권위 있게 제시된 진리”라기 보다는 “진리가 따뜻한 관계(공동체)라는 배경 속에서 제시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진리 없는 관계는 우리를 천박한 감상주의로 이끌고, 관계가 무시된 진리는 긴장감과 마찰, 결국에는 환멸 혹은 자기만족을 낳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이해와 교회 내의 소그룹의 위상을 분명히 세워야 하며 이러한 공동체성이 확립된 가운데 유기적으로 프로그램이 제시되고 운영되어야만 가정의 구체적, 근본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진정한 가정사역의 결실이 나나날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생활의 변화로 연결되는 풍성한 가정생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실과 상황을 직시하고 유기체.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중요한 본질을 회복하는 방안으로써 그 이상과 언제나 연결시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해야만 한다.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가정사역이란 단순히 교회의 일이나, 교회조직 속의 한 부속물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생동감이 결여된 과업중심의 기관에서 관계중심의 유기체적. 공동체적 본질로 회복되어야만 한다. 어떤 장소, 어떤 모임에 가족이 이렇게 함께 정규적으로 가는 곳이 교회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이제는 결국 가정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새롭게 되어야만 한다는 안목을 교회는 가져야 한다.

      • 웨슬리의 실천적 영성에 관한 연구

        최국순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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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의 목적은 웨슬리의 영성을 통하여 진정한 신앙과 그리고 신앙인의 마땅한 모습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신앙의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했음을 본 논문을 통해 밝혔다. 웨슬리의 영성을 통해 연구한 결과는 믿음과 행위는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 하나가 되게 한 매체가 바로 실천이었던 것이다. 존 웨슬리의 영성을 실천적 측면에서 연구한 까닭은 그가 바로 진리의 실천면에서 한 시대의 모델로 살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온전성결이 무엇인지를 실증으로 말하고 있다. 온전성결은 이 땅위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최종적 모습이다. 이 모습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 바로 ‘예수로 살아갈 때’이다. 여기서 말하는 ‘예수로’는 곧 신앙을 말하며 ‘살아갈 때’란 실천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신앙과 실천이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 온전성결이다. 실천을 통해서만 믿음이 견고해지고 성숙되어 간다. 실천이란 삶 가운데서 열매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이 실천이요 거기에 따른 반응이 곧 열매인 것이다. 따라서 믿음과 실천과 열매는 한 맥락위에 위치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실천적 영성을 말하지 않는 신학을 극구 멀리했다. 그는 살리는 것은 실천을 통해 나타나는 능력이지 사변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회심이후 그의 전 사역을 통해 오직 참 진리가 되는 영성의 실천적 삶을 살았다. 연구자는 그 영성의 삶의 몇 부분들을 다음과 같이 나뉘어 연구했다. 본 연구의 1장에서는 연구의 목적과 범위를 논했다. 2장에서는 영성과 영성신학을 존 웨슬리의 입장에 맞추어 축소된 범위 안에서 연구했다. 3장에서는 목회적 측면에서의 웨슬리의 실천적 영성을 다루었다. 여기에서는 부흥운동과 홀리클럽의 훈련을 함께 소개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웨슬리의 영성신학을 현대적 적용면에서 그 실천적 실례와 형태를 살펴보았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articulate the practical spirituality appeared in John Wesley's theology for Christians to have a more adequate understanding of the spiritual dimension of faith and practice. Hypothetically, the aspect of practical spirituality is considered as one of the crucial element for meeting the purpose of this study. Accordingly, this research tries to investigate the practical spirituality in Wesley's theology in relation to faith formation and practical life. Faith and practice are inseparable from each other, as the faith is the source of practical transformation of self in mind and action. John Wesley has extraordinary theological ideas for this relationship, that is a theology of holiness or Christian perfection. The whole holiness or entire sanctification as Christian perfection is the final stage for Christians to reach in their lives. The method for reaching the stage is "by Jesus" and "by living," which mean "by faith" and "by practice." The whole holiness can be reached through making oneself in accordance of faith with practice. A solid and mature Christian faith can be established through spiritual practice in Christian lives. As formation of faith occur in believer's heart, practical fruit is produced as response to the faith. Faith, practice, and fruit are basically on the same event of Christian spiritual experience. Wesley, therefore, denied any forms of theology, which did not include this aspect of practical spirituality. He emphasized the spiritual power making believer to live in accordance with practical spirituality. Right after his repentance in 1738, he began to live with the practical spirituality in his whole life. In terms of the structure of the study, first, the purpose and limitation of the study are delineated. Secondly, the general meaning and theology of spirituality in relation to Wesley's spiritual theology are mentioned. Thirdly, Wesley's practical spirituality was discussed in relation to pastoral ministries, which are revivals and Holy Club ministries. And finally, Wesley's practical spirituality is applied for contemporary Christian ministries as a model for practical spirituality.

      • 장애인 복지 선교의 통합교회적 전망과 과제 : 나사렛 교단을 중심으로

        김태오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국내석사

        RANK : 234271

        장애인 복지 선교에서 통합교회의 과제는 장애인을 분리하여 동정적이거나 자선적인 차원에서 구제하는 정도로 장애인 선교를 바라보았던 시각을 극복하는 데 있다. 통합교회라는 것은 장애인과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제하며, 함께 교육받는 통합목회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내의 모든 시설은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하며, 모든 공적인 예배는 청각 장애인을 위해 수화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주보 및 시청각 준비, 열려진 마음으로 장애인들을 예배에로 초대할 수 있는 통합목회를 의미한다. 통합목회를 실현에 옮기기 위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재평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본 연구는 성경에 나타난 장애인 관을 재정립 함으로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장애분류별 장애이해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장애인에 대하여 살펴본바 있으며, 이런 장애인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장애인 복지영역들을 살펴보면서 통합목회를 지향하는 장애인 선교로의 접근을 시도하였다. 끝으로 장애인선교에 대한 본 교단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내용을 분석해 보았다. 전체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는 미흡했으며, 실제적인 장애인 선교에 대한 실천도 미흡한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호전적인 것은 장애인과의 접촉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응답에 앞으로 장애인 선교에 대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 유대인의 신앙교육에 울타리가 된 가정교육 고찰

        황미애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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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신앙 교육을 고찰하면서 그들에 신앙이 얼마나 깊게 삶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뿌리가 깊이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가정을 통해 신앙이 전수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가정교육이 유대인 사회를 이끌어가는 밑바탕이 되고 있었다. 철저히 유대인 신앙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며 부모는 이에 대한 책임과 사명감을 인식하고 있었다. 유대인에게는 신앙이 그들의 삶에 의미라고 느낄 정도로 그들은 신본주의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확한 정체성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지혜를 사모 한다 그 들이 사모하는 지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지혜에 근본임을 알고 하나님에 말씀을 통해 가르친다. 그럴 때 아이가 인격적인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떠한 전문교육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중심을 갖고 교육한다. 그들은 성경을 근거하여 하나님을 아이가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신앙 교육에 많은 관심과 구체적인 방법으로 끊임없는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 부모에게는 자녀 교육이 부모로서 위임 받은 사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 반면에 우리나라는 신앙에 중심이 없이 여러 가지 신앙에 혼돈 시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에 자녀 신앙 교육의 인식과 책임감 상실이 현재 기독교 교육에 미래가 암흑해지게 했다. 부모가 자녀 신앙교육에 대한 책임감과 인식이 없게 되자 자동으로 교회에 신앙 교육이 전적인 의존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교회에 위탁된 임시 포동당과 같은 신앙교육으로는 하나님을 종교적인 개념만으로 유일신이 아닌 신들 중에 신으로 인식해 내적인 방황을 회복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도 가정 신앙교육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대부분 장년층에 치중하며 현재 신앙에만 머무는 성숙하지 못한 교회에 공동체가 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될 것이다. 편식 하는 거와 같이 내입 맛에 맛 는 교인 혹은 교회 교육이 아니라 유치부, 주일학교,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장년부, 노년부 까지 튼튼하고 건강한 기독교 교육을 깊이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정에서부터 기독교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장년층과 구역예배는 활성화 되었지만 깊은 신앙교육에 뿌리인 가정에서의 기독교 교육이 인식조차 되지 않거나 교회 유지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만약 기독교 가정교육에 대한 인식과 책임감이 회복 되지 않는 다면 멀리 내다보는 기독교 교육에 전수에 열매는 풍성히 얻지 못 할 것이다. 이제는 한국 기독교 교육이 회복되고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가정이 회복되어 가정을 통해 신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며, 가정 예배의 회복으로 하나님에 임재를 체험하고 가정이 부모를 통해 깊은 뿌리가 말씀을 통해 끊임없는 전수가 이루어 져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인식뿐만 아니라 교회 또한 가정에서 기독교 교육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럴 때 한국 기독교 교육의 권위가 떨어진 빛과 소금에 역할인 영향력이 회복 될 것이다. 하나님에 나라는 큰 곳에만이 아니라 작지만 영향력이 강한 가정 기독교 교육 회복과 그 뒷받침으로 교회가 함께 이 고민을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에 교회가 세상을 향해 더 나아가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면 먼저 무너진 가정에 성벽을 제건 하여 하나님에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가정이 회복 되려면 이 과제를 풀어 나아갈 때 건강한 가정, 사회, 국가, 세계가로 나아가는 선교 한국이라는 나라로 힘 과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 미래는 꿈나무인 어린아이들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정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말씀을 알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자라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교 한국이 될 만큼 성장한 한국 교회와 가정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뒤를 돌아보며 우리에 신앙을 전수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재에 급격한 변화로 오히려 한국에 그리스도인들이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에 마음을 두고 부모들의 욕심으로 하나님이 부여한 자녀 교육을 세상의 흐름에 경쟁하며 위험한 흐름을 타고 있다. 하나님을 알고 인격적으로 자라지 않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세상에 해가 되는 안타까운 사람으로 자라난다. 유대인들이 가장 핵심적인 세계 인물에 들어가는 퍼센트가 높은 것은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먼저 인격적인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는 부모들의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부모는 세상 기준에 성공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대인 부모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녀가 성장하길 기도한다. 그러한 신앙의 가치관에서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 아이들은 교육을 받고 자란다. 이제는 부모들이 자신에 욕심을 자녀들에게 두어서는 안 되며 자녀 스스로 인격적인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너무나 “선택”이란? 단어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대부분에 한국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에게 선택의 권리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격적인 존재인 하나님이 부부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으로 기다리며 신앙 안에서 말씀으로 자녀들을 가르치며 세상에 누군가를 이겨 남이 죽어야 내가 사는 험한 세상을 함께 더불어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녀들에 시야를 부모들이 여러 주워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소유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인격체라는 인식이 회복되고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닮을 때 그때가 진정한 내면적 혹은 질적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국 기독교 가정이 되지 아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파커 J. 팔머의 영성과 기독교적 가르침

        이은미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1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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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기독교영성을 기독교교육학에 적용시킨 논문이다. 영성의 범위가 넓고 애매한 만큼, 기독교영성의 개념은 설명될 필요성을 갖는다. 기독교 영성이 교육학적 차원에서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관점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기독교적인 가르침은 기독교교육을 말한다. 미국의 교사로 알려진 팔머(Parker J. Palmer)는 20세기 기독교영성에 대한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알리고 있는 학자이다. 팔머의 사상은 기독교영성을 중요하게 다루며, 지식, 영성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교육에는 영성적 차원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공간을 창조하는 교육행위를 제시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팔머의 영성과 교육에서 관찰된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도출하고 있다. 팔머의 영성은 기독교영성이며, 교육적 차원에서 교육영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팔머의 영성은 기독교적인 가르침으로 교회교육에서 적용하는 교육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영성은 교육적 차원에서 기독교적인 가르침이 되도록 한다. 그 가르침은 기독교교육의 실천적인 영성교육이 될 것이다. 기독교영성은 교육의 현장에서 소명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소명은 통전적, 전인적인 영성의 소리로 들려지게 될 것이다. 이 연구는 영성교육을 적용하기 위한 기독교교육을 말한다. 그러나 다양한 영성교육의 교육 분야를 다루지 못한 한계가 있다. 앞으로 영성교육이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적용되는 후속적인 연구가 지속되기를 전망해 본다.

      • 21세기 목회자 리더십 계발에 관한 연구

        김승호 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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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에 필요한 목회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영성 회복과 교회부흥을 위한 유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목회자로서 참 지도자가 되는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참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성서에 나타난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살펴보면 늘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울 때면 엎드려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인내력과 지구력을 가지고 기다리고 참고 견디며, 결단력과 책임감을 보여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40년간 훌륭한 지도력을 발휘한 모세의 지도력, 모든 일에 진취적인 결단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좋은 인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하나님과 깊은 신앙적 관계를 유지하는 다윗의 지도력,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베드로의 위대한 지도력, 철저히 주님만을 높이는 것을 보여주는 바울의 지도력 등등은 모두 섬김, 사랑, 겸손, 희생의 지도력이라 할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본받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위해 지도자는 늘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영적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영적으로 무장된 지도자의 리더십이야말로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이라 하겠다. 영적으로 무장되지 않은 리더십은 단순히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지도자의 길을 가려면 리더십의 수단보다는 영적지도자의 도리를 우선적으로 깨달아야할 것이다. 기도와 묵상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과정을 통해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지도자로서의 영적권위와 영성을 깨달아 21세기가 요구하는 참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계발하고자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실 것이다. Pastor for the 21th century is required a competent leadership by all means to region Divine nature and reconstruct church.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what a way of good leader and how to regenerate a good leader to construct the world God desire as a preparatory pastor. To perform this study, in the second chapter, major theories of leadership are discussed, in the third chapter, the Bible model of leadership, and in the fourth chapter as a church leader and enlightenment of leadership. The conclusion has completed by the fifth chapter. The Bible tells about the leadership not only a great service's records but also records of God's leaders. So to speak, the Bible is a design of relief and handbook for the leadership. So if someone wants to be a leader. He must learn leadership principle which the Bible from the Bible. In a word, the Bible define the leader is not possessed man but render man. In shortly, concept of the basic leadership is a servant of leadership and steward of leadership and a shepherd of leadership on the Bible. Leader have to do as follows to progress leadership. An attitude of effort one's whole life, devoted fighting spirit, making a detail plan and focus on the purpose. Nature enlightenment of sincerity, obedience and the gift of speech is an indispensable condition, the highest challenge to leader and absolute thing. The most important of leadership's Scriptural character is sincerity. Sincerity is attitude to not make a compromise anything that damage industry and honesty also behaving not to deceive one's ownself. In addition, warm hearted obedience is enlightened. To accomplish duty effectively, as a workman of God, have to take grace of the Holy without grace of the holy can't do God's job. Leader with this grace of the holy(grace of speech, knowledge, truth, management and authority), have to correct and encourage for followers to be relieved. Leader have to be come modest counselor to cure persons who were wounded and spiritless. Leader have to present the best way. The Christian religion's divine nature is essence of faith. It is life that depends on one's faith and belief, Divine nature's life of leader is power for everyone to follow. When leaders make efforts at enlightenment of Divine nature, leaders have got God's thought by a predictive insight. To estimate objectively whether leaders are successful or not happy world. What is leadership's principle and rule on the Bible? Jesus Christ's life is in itself. Leader for 21th century have to put complex leadership to practical use. Also leader must have unchangeable principle of love. Leadership must start from loving human, In a words, it is the Bible leader feature that served and besto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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