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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 이후 사회운동 분화과정에서 미시적 행위구조 분석 : 구로시민센터와 전국여성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생애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은정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2007 국내석사

        RANK : 250815

        In this thesis, I tried to explain not only the change of macroscopic social condition about differentiation process of social movement but also the definite behavior choice inheriting recognition, emotion, etc. of performer after 1987. The first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find out the microscopic behavior construction of the main group of social movement in the differentiation process of social movement after 1987, and the second purpose is to reanalysis the concept of People Movement and the Civil Movement on a point of view from main group of social movement, and the third, by making various groups of social movement to recognize and intercommunicate each other, I would try to make basis of productive solidarity. For this analysis I choose two groups. Both groups were separated from the outskirt supporting group of Labor movement in 1980's. In 1990's, they became specialized into a labor union and a civil organization. The main activists of each groups were interviewed by the Biographical-narrative interview and analyzed by Biographical case reconstructions. The conclusion of this thesis is as follows. The first, microscopic behavior construction of a majority type in both groups are as follows. 'E', a dictator of a Korean Women's Trade Union, analyzing the social condition after 1990, focused on changes of labors' life and living on a basis of labors' identity. And the present time, 'E' is working in labor union to develop the labors' life which were unchangeable. 'G', a dictator of a Kuro Civil Center started a social movement based on his own identity of a activist, and participated in labor movement in 1980's. And now he's taking part in local movement. Social alteration in 1990's which analyzed based on 'G's' own identity of a activist is the expansion of possibility of various social movement. In this way, a majority type of dictators in both group are still on service that matches to their intention of life. In the second, a minority type of dictators in both group are in conflict and change by facing up to identity between of their own and of the group. 'B', a dictator of Korean Women's Trade Union that the revolution-oriented were their main strength, choose the life of a labor activist with a standard life instead of his own revolution-oriented. 'I', a dictator in Kuro Civil Center, who had very strong directivity to 'Become a labor' describes himself as 'Rank preserving local activist'. But 'I' is in a mental conflict between himself recognizing the class consciousness and collective identity judged by ideological stiffness. The third, dictators of each groups analyze differently the change of social condition by their difference of microscopic behavior construction and choose another social movement. Microscopic behavior construction of a dictators' own, interacts with other performers and manifests to collective identity. Korea Women's Trade Union choose 'This place is where I must belong', on the basis of directivity to 'Become a labor' as the standard of living of female labors, who are still suppressed and excluded after a pro-democracy movement in 1987. Kuro Civil Center captured the possibility of local movement which started after the operation of Local Autonomy System in 1987. They chose for 'Create a new model of a popular movement' on the basis of identity of a legal crusader. Fourth, normalize the activity of both group, that are started with different choices, as follows. Activity of Korea Women's Trade Union is not the labor movement centered by a revolutionary movement. The members of a Korea Women's Trade Union are particular employees. They were irregular and service workers and subcontractors and couldn't have guarantee of their rights and interests in existing labor movement. Therefore they work for the identity of female workers to become secure in present society. This newest labor movement is 'The minority movement in labor movement' Kuro Civil Center performs various activities to make local residents to be the main subject of local government. Their services are not only to enhance the political awareness of local residents but also the education and activity about the issues of politics and social. Because the directivity of Kuro Civil Center is 'Local movement, aiming to make the masses to have the political power', and not the citizen movement. Fifth, in this way, as you can see the intention of life of both groups' dictators and their detail works, dichotomy, like 'People Movement vs Civil Movement', can't explain about the actual social movement after 1990's. Labor movement, over 20 years of 'E', a dictator of Korean Women's Trade Union, is the directivity to change the labors' life rather than the revolution-oriented. Local movement of Kuro Civil Center tries to make practical social change by making local residents to become a main subject of local government To make the masses to have the political power is the directivity to people's acquisition of authority. The concept, 'Revolution-oriented People Movement', like above, is only an ideological directivity established focusing on labors and grass-roots with the progress of revolution ideology of Marxism-Leninism. It's different from the practical actions of the performers. 본 논문은 87년 이후 사회운동 분화과정에 대해 거시적 사회조건 변화 뿐 아니라, 행위자의 인식ㆍ감성 등이 내재된 구체적 행위선택을 포함해 설명하고자 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첫째, 1987년 이후 사회운동 분화과정에서 사회운동 주체들의 미시적 행위구조를 밝히고, 둘째,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개념을 사회운동 주체들의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셋째,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운동 주체들이 서로 인정하고 상호소통을 함으로, 생산적 연대를 위한 바탕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런 분석을 위해 80년대 노동운동 외곽지원 단체였고, 90년대 한 단체는 노동조합으로 한 단체는 시민단체로 분화한 두 단체를 선정했다. 각 단체 핵심 활동가를 생애사 인터뷰 방법으로 인터뷰했고, 생애사재구성 방법으로 분석했다. 본 논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두 단체 다수 유형의 미시적 행위구조는 다음과 같다. 전국여성노동조합(전여노조) 구술자 E는 노동자 정체성을 기반으로 90년 이후 변화된 사회조건을 노동자의 삶ㆍ생활의 변화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구로시민센터 구술자 G는 사회운동가적 정체성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80년대 노동운동을 했고, 현재는 지역운동을 하고 있다. 구술자의 사회운동가적 정체성으로 해석된 90년대 사회변화는 다양한 사회운동 가능성의 확장이다. 이렇게 두 단체 다수유형의 구술자들은 자신들의 생애지향과 맞는 활동을 현재도 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둘째, 두 단체 소수 유형 구술자들은 개인의 정체성과 단체의 정체성이 부딪치면서 갈등과 변화를 겪는다. 변혁지향이 강했던 전여노조 구술자 B는 자신의 변혁지향을 버리고 ‘생활인으로서 노동운동가’를 선택한다. ‘노동자 되기’의 지향이 강했던 구로시민센터 구술자 I는 현재 ‘계급성을 유지하려는 지역운동가’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러나 계급성을 인정하는 자신과 이념적 경직성으로 판단하는 집합적 정체성 속에서 심리적 갈등이 드러난다. 셋째, 각 단체 구술자들은 미시적 행위구조 차이로 사회조건 변화를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사회운동을 선택한다. 구술자 개인의 미시적 행위구조는 단체 내 다른 행위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집합적 정체성으로 발현된다. 전여노조는 ‘노동자 되기’의 지향을 중심으로,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도 여전히 억압ㆍ배제당하는 여성노동자의 삶을 기준으로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이곳’으로 선택한다. 구로시민센터는 87년 이후 지방자치제도 시행으로 열려진 지역운동 가능성을 포착한다. 합법화된 사회운동가 정체성을 기반으로 ‘대중운동의 새로운 모범을 만들기’ 위한 선택을 한다. 넷째, 다른 선택으로 시작한 두 단체 활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전국여성노동조합 활동은 변혁운동의 중심인 노동운동이 아니다. 전여노조 조합원들은 기존 노동운동에서 권익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여성 -비정규직, 용역ㆍ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의 정체성을 현 사회에서 보장받기 위한 활동을 한다. 이 새로운 노동운동은 ‘노동운동 내 소수자 운동’이다. 구로시민센터는 지역주민들이 지역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지역민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생활적 실천 이외에도 정치ㆍ사회적 이슈에 대한 교육과 활동을 병행한다. 구로시민센터의 지향은 시민운동이 아니라, ‘대중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지역운동’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렇게 두 단체 구술자들의 생애지향과 두 단체 활동내용으로 볼 때 ‘민중운동 vs 시민운동’의 이분법은 90년대 이후 현실 사회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 전여노조 구술자 E의 20년이 넘는 노동운동은 변혁지향성보다는 노동자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지향이다. 구로시민센터 지역운동은 지역주민들이 지역정치의 주체가 됨으로 실질적 사회변화를 이루고자 함이다. 대중 정치세력화란 대중의 권력 획득에 대한 지향이다. 이렇게 ‘변혁지향적인 민중운동’이란 개념은 맑스ㆍ레닌주의 변혁이념에 따라 노동자ㆍ기층민중을 변혁의 중심으로 설정했던 이념적 지향일 뿐, 행위자들의 실천과는 다르다.

      • 베트남 시민사회 연구 : 호치민시를 중심으로

        홍창훈 성공회대학교 2008 국내석사

        RANK : 250815

        국 문 초 록 점증하는 한국과 베트남의 활발한 교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양국 시민사회가 주도적 역할을 통해 보다 나은 해결책을 제 시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아직 베트 남 시민사회와 관련된 연구물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베트남 시민사회에 대한 본 연구는 한국 시민사회에 베트남 시민사회에 대한 기본적 정보 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베트남 시민사회와 연대하 고자 하는 한국 시민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고 진행하였다. 본 연구가 담론적으로 파악한 베트남 시민사회는 사회의 모든 영역 을 담당하던 국가가 사회구조의 다변화 등으로 야기된 새로운 문제에 효 과적으로 대체하지 못하자, 새로운 문제해결의 주체로 국가에 의한 일정한 관리 감독이 가능한 시민사회단체와 INGO를 인정하는 국가 조합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베트남의 시민사회단 체는 위로부터 주어진 개념이 되고, 시민사회 역시 주어지게 되었다는 것 이다. 한편 베트남은 여러 시민사회이론 중 가장 단순한 개념적 기준을 제시한 헤겔적 개념이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이 국가의 영역이라고 본 공적영역 속에 시민사회가 포함되는데 이는 새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을 기존 공적영역을 담당하던 국가가 제대로 해결할 수 없어 시민사 회의의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한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 국 베트남의 시민사회는 국가와 평등한 협력관계는 아니지만, 보조 보완적 역할하고 있으므로 일종의 국가협력관계로 볼 수 있음을 말한다. 개량적 지표들을 통해 살펴 본 베트남 시민사회에서 INGO의 공식 활동은 1975년 미국과의 전쟁이 종료한 이후이며, 2007년 현재 약 560 여개의 단체가 약 17개의 그룹에 속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 고, 이들은 주로 건강, 교육 부문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자국 시민사회단체의 경우, 과거 국가와 연결되어 있던 대중조 직이 시민사회단체로 불리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국가의 필요에 의 해 설립되거나, 설립이후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그 외 조 금씩 국가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생성된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또 시민사회 관련 고용인구 중 의료 및 사회지원 고용인구 비율을 보면, 중앙이 0.016%, 지방이 0.082%로 약 4배가 넘는 인구가 지방에서 활동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베트남의 시민사회단체가 정부 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개량지표라고 할 수 있는 인간개발지수는 1990년 0.618에서 2004년 0.709(109위)로 상승해 베트남의 사회적 시민권리가 높지 않지만 증가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국민소득(GNI)은 $825 이 하로 하위권에 속한다. 1986년 개혁개방정책 이후 경제성장을 하고 있 지만, 아직 빈곤에서 벗어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자유화 지수는 비자유(NF) 등급, 부패인지지수는 2.6점으로 하위권, 언론의 자 유 부문은 비자유(NF) 등급에 속하는 등 베트남의 시민사회는 여전히 국가의 직간접적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지표들을 통해 베트남 시민사회가 가질 주요 역할이 정부 보완 적 활동으로 공공서비스 제공이 될 것임을 예상 할 수 있었다. 또한 담론적 계량적 관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베트남 시민사회 구성원들 스스로가 파악하는 경험적 인지적 시민사회의 정도를 측정 비교해 베트남 시민사회를 보다 현실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이를 위 해 런던정경대학 시민사회연구소와 국제NGO인 시비쿠스(CIVICUS)가 공동 개발한 시민사회지표(CSI: Civil Society Index)라는 분석적 도구 를 사용하였다. 대상은 등록단체그룹, 미등록단체그룹, 미등록봉사활동 단체그룹, 언론그룹, 대학생그룹 등으로 분류하였으며 이는 베트남 시 민사회 내에 존재하는 단체를 특성별로 분류하여 조사 비교 분석함으 로써 연구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시민사회 외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언 론과 대학생그룹을 포함하였다. 한편 조사 대상이었던 대학생그룹의 경 우, 등록단체와 평가 결과가 비슷하고, 시민사회 개념의 이해정도가 유의미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결과를 살펴보면, 조사대상자들은 베트남 시민사회의 가치 차원과 영 향력 차원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었고, 구조 차원과 공간 차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었다. 이는 체제상 제약이 상당히 존재하는 현실과 공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속적 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과 시민사회단체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 등 베트남에서 보통 시민사회는 공적 영역, 즉 사회적 공공서비스 분야를 생각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예상 가능한 평가였다고 할 수 있다. 최고의 평가를 받은 가치 차원은 시민 사회단체들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가치를 도입하고 적용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에 국가의 관리 감독으로 인해 시민사회단체의 투명성과 민주성이 일정 수준 담보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등록단체의 경우 실 제 단체 활동에서 법적 제도적 제약 및 정부의 정책방향과 크게 벗어 나지 않는 범위의 활동, 정부와의 긴장상태 유지, 새롭게 변화하는 사 회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역할 등에 스스로 의미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종의 주창성을 가지고 있어, 자신들의 주창 내용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관리 감독이 없어도 운영상의 투명성과 민주 성을 지켜야한다는 의식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기 대 수준이 다른 그룹에 비해 높아 평가가 낮게 나왔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 미등록봉사활동단체의 경우, 일정 수준 자발적 복종 상태가 유지 되고 있으며, 일련의 정부실패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활동에 대 해서 법적 제도적 제재의 유연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록단체 의 경우, 특이한 점은 영향력 차원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의외로 낮은 평가를 내렸는데, 이는 기대가치가 높아 실제 미치는 영향 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언론그룹의 경 우, 의견 표현의 자유가 일정부분 허용되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 유를 실제 느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시민사회단체가 스 스로 새로운 가치를 대변한다고 보는 가치평가에서 시민사회단체보다 낮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연구 결과, 베트남 시민사회는 부족하지만 조금씩 국가로부터의 자율 성을 획득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트남은 지속적인 개방으로 사회 구조가 다변화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생활양식과 문제 점들이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 결국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며, 비록 대중조직 등에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을 맡겨 문 제해결을 시도한다고 해도 통제체제하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 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포용적 국가조합주의로 평가되는 베트남은 의 도하든 아니든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조직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과 일 정수준 정도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 상할 수 있다. 결국 베트남 시민사회에게는 성숙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베트남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인지적 평가를 보면, 중국의 시민 사회와 비슷한 평가를 보여준다. 이는 베트남과 중국이 가진 공통적 특 성에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현재 베트남의 시민사회 역시 중국 의 시민사회와 비슷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시 민사회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주요어 : 베트남 시민사회, 미등록단체, 미등록봉사활동단체, 등록단체, 공민사회(xa h.i cong dan), 시민사회(xa h.i dan s.), 비정부단체(t. ch.c phi chinh ph.), 시민사회지표(CSI: Civil Society Index).

      • 환경정책과정에서 NGO역할에 관한 연구 : 광주 무등산 환경정책 사례에서 시민사회단체 참여를 중심으로

        김희송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50799

        본 연구는 NGO의 관점으로 광주 무등산 환경정책사례에서의 NGO 참여와 그 역할을 실증 분석하고 분석 결과를 토대로 향후 환경정책에서 NGO 역할 증대방안을 모색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무등산환경정책사례에서 대표적인 현안문제인 운림온천개발저지 운동과정을 3가지 시기로 구분하고 문제의 흐름·정치의 흐름·정책의 흐름에 따라 NGO의 참여와 역할을 문헌조사와 참여관찰,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등산 운림온천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무등산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이용방향에 대한 지역사회 구성원들간의 합의와 이해가 형성되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개발가치와 보전가치의 대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의 훼손을 초래할 온천개발에 대한 정책결정과정이 시민참여가 배제된 채 이루어짐으로서 이후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였다. 또한 개발패러다임의 시기에 이루어진 정책결정이 환경패러다임으로 변화된 시기의 정책방향을 규정하면서 논란을 더 증폭시켰다. 무등산 운림온천개발 저지운동과정에서 NGO는 가시적 참여자로서 운림온천 문제해결을 위해 이슈생산자로서의 역할, 정보제공자로서의 역할, 감시자로서의 역할, 대안제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슈생산자로서의 역할은 시민들이 미처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던 온천개발에 따른 환경파괴문제를 이슈화시켜 시민의 관심을 유발하고 긍극적으로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형성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어진다. 시민단체의 정보생산 및 정보제공활동은 이슈생산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활동의 결과 운림온천개발이 가져올 환경파괴문제를 시민들이 인식하게 되었고 운림온천 개발에 대한 반대여론 형성의 촉매제가 되었다. 대안제시자로서 NGO가 제시한 정책대안은 지방정부차원에서 바로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시민단체가 대안제시를 통해 환경문제해결에 진지하게 참여함으로서 환경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것은 시민들의 환경의식 제고와 시민단체의 신뢰성 제고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참여와 그 역할은 운림온천개발에 대한 정책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책변화의 요인이 ‘정당성(Legitimacy), 실행가능성(Feasibility), 지지(Support)’라고 했을 때 지방정부는 온천개발에 대한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반대와 이에 따른 부정적인 시민여론형성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등산에 대한 시민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비롯하여 시민여론의 잣대가 될 수 있는 언론보도의 빈도와 내용, 다른 단체와의 연대정도 등을 종합해 볼 때 시민단체의 무등산 운림온천 개발저지활동은 효과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운림온천개발 저지운동사례에서 NGO의 정책참여는 정책의제화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가능하다면 정책의제형성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NGO의 정책참여방식에 있어 집회, 캠페인, 서명운동, 성명서 발표 등 비제도적 참여에서 점차 간담회, 공청회, 위원회 참가 등 제도적 참여가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제도적 참여도 병행되지만 과거에 비해 비제도적 참여보다는 제도적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진 것이다. 이것은 정책과정에서의 NGO 지위와 역할에 대한 변화로 NGO가 외부자 집단(outsider group)에서 점차 문턱집단(thresholder group)으로 지위와 활동영역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향후 NGO의 역할제고 방안을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해야한다. 둘째, NGO의 전문성과 역량강화가 필요하다. 셋째, 네트워크의 활성화로 연대성과 협력을 강화하여야 한다. 넷째, NGO 내부의 민주적 의사결정과 인적 자원관리 강화방안이 마련되어야한다. 다섯째, NGO의 독립성·투명성·책무성을 강화하여야 한다. 여섯째,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 비판과 협력의 조화가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역할제고 방안을 통해 환경NGO는 NGO에게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과제와 도전들을 능동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analyze participation and role of NGOs in Gwangju Mudeungsan(Mt. Mudeung), and to search for ways of extending NGO's role in making environmental policy process in the future. In order to pursue the purpose, this study divides the whole process of 'protesting against Unrim spa development', which is the most current representative issue regarding ‘Mudeungsan environmental policy' case, into 3 periods and examines the NGOs' participation and its role through content analysis of documents, participant observation, and interviews. The research i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a policy is composed of three separate but related streams, i.e. problem streams, political streams, and policy streams. The result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of all, the conflict aroused from Mudeungsan Unrim spa development' is mainly came from the inability to reach the mutual understanding and consensus of opinions among local residence on value which lies in Mudeungsan. In short, it is a debate between conservation values and development values. Especially, without any engagements or participations of local citizen in making policy process of spa development which would cause severe damage to the Mudeungsan the symbol of Gwangju, it was plain to see that it would have resulted in serious conflict thereafter. Besides, the conflict has been intensified by the fact that the policy decision that was made in development paradigm period is still regulating and controlling policy direction of environment paradigm period. In the process of protesting movement against Unrim spa development, NGOs, a visual participant, played a critical role as an issue generator, information provider, monitor, alternatives provider to solve the problem. The role as an issue generator is to bring out the environmental destruction problem that citizens had not yet been recognized in issue to stimulate citizens' attention and basically to have influence upon policy making process. Information producing and providing activities of NGO has implemented with close relations with issue producing. As a result of these activities, citizens started to recognize the consequences that Unrim spa development will bring later on and became a catalyst to formation of anti-development opinion. Although the proposed alternative policy from NGO did not take effect in the policy at local governmental level, it surely enabled us to approach environmental problems from different angles through cordial participating in problem solving and suggesting alternatives, and greatly contributed to heightening citizens' environmental awareness and NGO's credibility as well. These NGO's participations and roles had big impact on the policy stream. Supposed the factors of policy changes are 'legitimacy, feasibility, and support', NGO's enthusiastic opposition and derived negative opinion formation from the public on spa development might be hard to be ignored. Considering the survey conducted on citizen consciousness, frequency of public releases and contents, and correlation with other organizations, protesting movement against Unrim spa development has implemented efficiently. In addition, it is obvious that NGO's participation is more efficient if it is made at the policy issuing phase, and if possible, from the phase of making the policy agenda. In the methods of NGOs' policy making participation, it has gradually shifted from informal meetings, campaigns, signing movements, and presenting announcements that are non-systematic participations into social gatherings, public hearings, and committee meetings, etc, which are systematic participations. Compared with practices in past, this trend of systematic participations to solve problems has been on rise lately though it sometimes combines with non-systematic participations. As we may see this is a change in NGOs' status and role from outsider group to thresholder group and its activity domain is changing respectively. Through this study, the plans of heightening the NGOs' role can be pointed out as followings; First, NGOs should strengthen their independence, transparency, and accountability. Second, NGOs should prepare for democratic opinion-making process and human resources management program inside. Third, NGOs need to secure the support of citizens. For this purpose, we can consider the intensifying communication with citizens and the usage of the internet. Fourth, NGOs need to raise the competency of social evolution through the strengthening capability and specialty. Fifth, NGOs should build up the solidarity and cooperation through the utilization of network. Sixth, it would be advisable to harmonize criticism and cooperation in relation with the Government. Environmental NGOs will be able to actively overcome new tasks and challenges through these heightening role plans.

      • 시민단체 조직분석 : <함께하는 시민행동>을 중심으로

        장상미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50799

        오늘날 시민단체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회세력이다. 시민단체에 투입되는 자원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개입하는 사회적 의제의 종류와 범위도 매우 방대하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창립을 기점으로, 지난 15년 간 한국의 시민단체는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경험과 사례를 축적해왔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은 시민단체의 동학을 탐구하기 위하여 특정한 단체를 선정, 해당 단체의 주요한 조직적 특성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의 대상은 정보화시대의 새롭고 대안적인 운동으로서 인터넷상의 시민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시민행동’) 이다. 연구자는 조직 내부자로서 참여관찰과 문헌연구를 통해 ‘시민행동’의 조직적 특성을 일정한 틀에 따라 분석하였으며,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9년 ‘시민행동’이 창립될 즈음, 기존의 시민단체들은 금융실명제, 소액주주운동, 총선시민연대 등을 통해 폭발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와중이었고, 국제적으로도 NGO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었다. 그런만큼 시민단체의 도덕성, 책임성 등에 있어서 내외부적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때이기도 했다. 새롭고 대안적인 운동을 내세운 ‘시민행동’의 창립은 이러한 시민운동이 갖는 특징이자 한계점으로 ‘추상적 시민, 포괄적 범주의 사업영역, 정책대안 생산 중심, 집회와 시위 중심, 중앙집중형 조직, 내부민주주의 미약’ 등을 들었다. 그리고 대안으로서 ‘성찰적 시민, 구체적 과제, 시민의 행동중심, 온라인 운동, 네트워크 조직, 내부 민주주의 확대’를 내걸었다. 지난 5년 간의 활동을 통해 ‘시민행동’은 그러한 대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여왔고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납세자주권, 정보인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이슈화함으로써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미래지향적인 활동을 벌이는 조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전달과 자원동원의 중요한 사례를 남기기도 하였으며, 초기의 불안정한 조직적 조건을 투명성과 책임성 등 조직운영상의 묘미를 살림으로써 성공적으로 돌파해 왔다. 그러나 ‘시민행동’은 이른바 ‘대안적 시민운동’으로서의 이같은 성과를 단지 선언적인 수준으로서가 아니라 운동의 전형으로 정착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사업별 활동은 정책대안생산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시민운동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재정적 안정은 여전히 요원한데다 직접행동 및 내부민주주의의 측면에 있어서는 형식적 수준의 실험이 되풀이되고 있는 상태이다. 종합하자면, ‘시민행동’은 이상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운동을 추구하되 실질적으로는 기존 시민운동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조심스럽게 변화를 모색해온, 일종의 과도기적 특성을 보이는 조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적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과도기적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변화하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행위주체의 다양성을 높이는 한편 조직의 가치와 활동내용, 운영방식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인적자원확보와 재정안정화를 위해 조직 내외부적 조건을 변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Shimin-danche (civic organizations) are one of the great influential sectors in Korea today. They take part in a wide range of social issues with huge resources and public support. Since the Citizens' Coalition for Economic Justice (CCEJ) was founded in 1989, Shimin-danche and Shimin-undong (civic activism) have made unprecedented achievement over the past fifteen years. This study aims to analyze the organizational characteristics of a specific organization, to gauge the dynamics of Simin-danche. The subject" of this study is the Citizens' Action Network (CAN), an organization advocating the 'alternative civic activism' via the internet with the advent of information era. As a member of this organization, I tried to analyze its characteristics using participant observation and additional materials. The followings are the facts. CAN was founded in 1999. In those days, various Shmin-danche were growing rapidly. Especially, the success of several campaigns-'real-name financial transaction system', 'minority shareholders' rights', 'nakchun-naksun-undong in general election 2000', etc.- had guaranteed great social influence and accountability on Shmin-danche. In addition, the number of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NGOs) was increasing rapidly all over the world. But to that extend, the criticism was also deepening on the organizational democracy, morality, and transparency. Concerning these circumstances, CAN stressed the idea of alternative civic activism as a critical concept of organizing. It argued the problem of the existing Simin-danche was the abstractive concept of 'citizen', centralized structure, overly various issues, one-sided advocating, and lack of organizational democracy. And then, it promoted self-reflective citizen, specific issues, direct action and proper organizational democracy. During the last five years, CAN partially succeeded in performing these subjects. Firstly, it called attention successfully to the issues of taxpayers' right, privacy protection, accessability to information, and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Secondly, it pioneered in online networking and mobilization as an effective way to activate direct civic action. Thirdly, it passed over the initial instability with sufficient administrative rules, for example, transparency, responsibility, and procedural democracy. Despite these results, it seems that the alternative civic activism stays on the level of a declaration, not a substantial dynamic of the organization. First, one-side advocating remains as a leading methodology. Second, financial base is not yet stable. Third, of direct civic action is not an intimate strategy. In short, CAN is an organization in the transition stage, preforming slow but steady progress from the existing Simin-danche to the alternative civic activism. For the sustainable organizational development, it need to limit the field of the transition stage, and change the interior and exterior circumstances to obtain sufficient human resources and financial base.

      • 정치적 기회구조의 변화와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 :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서미라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2002 국내석사

        RANK : 250783

        1990년대 들어와서 국가와 여성단체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게 되면서 '진보적' 여성운동 내부에서의 제도화에 관한 문제 의식이 커졌다. 여성학계에서도 이에 관한 논의가 제기된 바 있으나 이론적 논의가 크게 진전되고 있지는 않다. 여성운동계에서는 제도화를 재정과 단체 지도부의 제도영역 진입으로 인한 자율성 침해와 지도력 유출이라는 부정적 영향의 측면에서 협소하게 이해하고, 학계에서는 국가와 여성운동 또는 여성정책의 관계에 대한 제한적 범위에서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90년대에는 이념적. 실천적 측면에서 80년대의 운동과 다른 맥락을 지닌 '새로운' 운동이 부각되면서 여성운동의 변화를 이러한 운동의 흐름으로 간주하고 서구의 신사회운동이나 가치중심의 단순한 의식개혁 및 문화운동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여성운동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여성운동의 변화, 특히 제도화의 측면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본 연구자는 90년대 '진보적' 여성운동의 변화가 제도화의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보고, '진보적' 여성운동이 제도화하게 되는 배경과 과정, 그리고 제도화로 인한 영향이 한국 민주주의에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민주화과정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를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의 연구문제에 중점을 두었다. 첫째, 여성운동이 제도화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 요인은 무엇인가 둘째, 여성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도화하는가 그리고 여성운동의 제도화는 어떤 양상을 갖는가 셋째,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한국의 민주주의 전망에 있어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등이다. 연구의 대상으로는 <한국여성단체연합>과 그 회원단체를 선정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세 가지 과제에 중점을 두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제도화의 요인에 관해서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운동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과 내부적 요인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지구적 차원에서의 국제정치 변화와 UN 및 세계 여성운동계의 '성주류화' 전략을 들 수 있고 이것이 '진보적' 여성운동이 여성해방이념과 '성주류화' 전략을 채택하도록 이념적 차원에 영향을 주었다면, 국내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기회구조 확장은 제도정치에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였고 법제화운동을 펼칠 수 있도록 실천적 차원에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내부적 요인으로 '진보적' 여성운동의 이념은 사회변혁을 통한 계급해방과 여성해방에서 '성주류화'를 통한 양성평등으로, 운동의 주체는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기층여성으로부터 여성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이념과 주체의 변화는 거리 투쟁과 동원 중심의 운동방식에서 여론화를 통한 영향력의 정치와 법. 제도에 대한 비판과 정책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변화시켰고, 활동가도 조직가와 투쟁가로서보다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게 되었다. 두 번째, 제도화의 과정에 관해서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양면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도화의 과정에서 운동이슈, 운동조직, 운동가로 구성되는 각각의 운동요소는 일상화, 포섭, 흡수의 양상과 더불어 진보화, 활용, 침투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일례로 운동이슈 중에서 <학교급식>과 <성폭력 예방교육> 문제는 제도 영역의 기관을 통해 '일상화' 되는 한편 운동 영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학교운영위원회에 의해 안착화 되었고 학교에서의 양성 평등적 관점에서 실시되는 성교육과 직장에서의 의무화된 성희롱예방교육으로 그 내용이 질적으로 '진보화' 되고 있었다. 운동조직의 차원에서는 행위방식이 제도적 양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섭의 측면을, 제도적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활용의 측면을 보였다. 운동가의 차원에서는 정책결정과정, 제도 정치영역, 행정조직 등에서 포섭과 침투의 양상을 보였다. 세 번째, 제도화의 영향에 관해서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여성운동, 시민사회, 제도정치의 모든 측면에서 양면적인 영향을 낳았다. 여성운동 측면에서는 한편으로 '보수적' 여성단체의 비판기능과 사업영역이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로 인해 확장되었고, 다른 한편 제도화된 여성운동은 운동이슈의 급진성 을 약화시킴으로써 급진적 여성운동으로부터 문제제기를 받게 되었다. 시민사회 측면에서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시민사회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한편, 국가 행정기구의 보완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수동적 기능 강화에 일조 하였다. 전자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후자는 실업극복운동에서 특히 공공근로사업과 '실직여성가장겨울나기' 사업을 사례로 볼 수 있다. 제도정치 측면에서는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가 여성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면에 제도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인정해주고 강화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낳기도 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정치적 기회구조와 '진보적' 여성운동의 상관관계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이행기로 접어들면서 확장된 정치적 기회구조가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하여금 제도정치에로의 접근을 쉽게 하였으나 운동 제도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진보적' 여성운동의 '성주류화' 전략의 채택이 제도화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민주주의 이행기에서 정치적 기회구조가 다소 축소된다하더라도 '진보적' 여성운동의 제도화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주요어 여성운동, 여성단체, 제도화, 양성평등, 민주주의, 여성권리(권익), 여성인권, 여성정책, 성주류화, 제도정치, 시민사회, 정치적 기회구조 A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feminist movements entered into a new phase in the 1990s with the introduction the financial assistance from the government, the issue of institutionalization has been raised and fiercely discussed among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s. This issue has also been on an academic agenda, but it has not yet reached a level of theoretical discussion. The feminist movement groups tend to hold a narrow view that institutionalization means the encroachment on their autonomy on the basis of financial assistance from the government. They also believe that institutionalization adversely affects the feminist movement so that the capacity of their leaders could be compromised. On the other hand, there is another tendency that the changes in the feminist movement can be regarded as belonging to the new movement in 1990s, which has a different context from the movement in 1980s in terms of ideological and practical perspectives. This tendency tries to understand the feminist movement at the level of the reform of consciousness or the cultural movement. This thesis contends that there is a need to have an appropriate perception on the feminist movement by reviewing the changes in the feminist movement, particularly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in its institutionalization, For this purpose, this thesis looks at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and its effect on the democracy in Korea on the whole. The paper focuses on three questions with a view to analyzing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feminist movement in the process of democratization: 1) What are the factors that have prompted the feminist movement to its institutionalization?; 2) h what process has the feminist movement been institutionalized? And, what modality has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feminist movement assumed?: and 3) What kind of effect does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have on the democracy of the Korean society? These questions were pursued in a case study of the Korea Women's Associations United (KWAU) and its affiliates. The findings of this thesi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of all,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results from the interaction between external circumstances and internal factors. External circumstances can be divided into two points: 1) effects from the United Nations and overseas feminist movements, which made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adopt the strategy of gender as a mainstream strategy; 2) extension of the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 which facilitated the access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to the political regime so that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could take practical measures through legislative movements. Internal factors are changes of the ideology and the subject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That is, the ideology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has changed from the emancipation of classes and women through social revolution into the gender equality through the strategy of gender. And the subject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has become to cover not only female workers, but all women. With these changes, methods of movement, which had focused on the demonstration and raising publicity, started to concentrate on influencing public opinion and presenting alternative legislation and policy. Secondly, with regard to the process and modality of institutionalization, the main factors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such as issues, organization, and activists had acquired both the front and the back in the process of institutionalization. For instance, through institutionalization, the issue of the movement came to give much weight on ordinary matters such as gender-enlightened education in schools. Thirdly,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also has both positive and negative effects on the feminist movement itself, the civil society and the institutionalized politics. With regard to the feminist movement, capacities and activities of the conservative feminist groups were enhanced and expanded while the radical feminist movement showed up. The power of civil society was also strengthened while the civil society came to accept the neo-liberalism without much criticism and helped make the power of the state reduced in the welfare provision. Finally,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positively converted the paradigm of the policy on women, but there was a negative effect that the lawful political power was justified. The findings of this thesis indicate that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has a close interaction with the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s, As the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s expanded in the process of democratization,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could have easy access to the institutionalized politics. However, it cannot be concluded that the changes in the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 itself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Rather, it. seems that the adoption of the strategy of gender as a main stream by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its institutionalization. Therefore, even if the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s were to be temporarily halted in the transition to full democracy,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he progressive feminist movement would be irreversible. Keywords: feminist movement, feminist groups, institutionalization, gender equality, democracy, women's rights, women's policy, gender as a main stream, civil society, political opportunity structure

      • 한국기독교평화운동연구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봉사부, 한국YMCA전국연맹 생명평화센터, 개척자들 중심으로

        최수철 성공회대학교 2011 국내석사

        RANK : 250783

        본 연구는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는 한국기독교에 대한 반성과 개혁, 새로운 대안으로서 한국기독교평화운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2000년대 이후 한국기독교 내에 ‘평화’를 중심 주제와 영역으로 삼는 운동단체가 조직되었고, 기존의 기독교연합기관과 기독교단체에서도 ‘평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해를 가지고 ‘평화운동’을 시작했다. 본 연구는 ‘기독교평화운동’이 현재 한국기독교 내의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즉, 한국기독교 내에 평화운동을 표방하는 단체들이 생겨난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며, 한국기독교평화운동단체들의 성격과 양태가 정치적 평화 뿐 만 아니라 평화교육, 평화영성, 화해와 중재 등 다양한 활동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한 탐구가 포함된다. 현재의 한국기독교평화운동은 보수적 한국기독교의 지형 속에서 대안적인 기독교사회운동의 하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본 연구의 주제이다. 이를 위해 기독교평화주의에 대해 역사적이고 개괄적인 검토를 실시하되, 그 한국적 적용과 영향을 탐구하고, 한국시민사회단체에서 진행되는 평화단체에 대한 소개와 아울러 한국기독교평화운동의 사상적 배경을 논구한다. 이후 한국기독교 내에서 ‘평화’를 주제로 평화운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단체 중 세단체 즉, 교단 차원에서 교회 내에서 평화운동을 펼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봉사부>와 해외 분쟁지역에서 평화활동을 전개하는 기독교 배경의 단체인 <개척자들>, 그리고 시민사회 속에서 생명평화운동을 펼쳐나가는 <한국YMCA 생명평화센터>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그리고 그 결론으로 첫째, 한국기독교 내에서 평화운동이 정착될 수 있는 방법론적 필요성을 강조했고, 둘째, 한국기독교평화운동은 통전적인 평화운동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셋째, 한국기독교평화운동단체의 연대와 협력은 무엇보다 중요성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공동의 실천의 장을 펼칠 수 있는 협의기구나 협의체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 시민사회 리더십의 이론적 고찰 :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함의

        한상규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2005 국내석사

        RANK : 250783

        시민사회는 서구에서 계몽시대 이래로 신분제적으로 예속 받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체이며, 자신들의 권력을 소수에게 위임하여 국가를 구성토록 하는 정치적 주권의 소재지로 이해된다. 이리한 사회변동 요소와 함께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는 기술의 전문화, 기능과 직종의 다양화 추세 등으로 인해 리더가 그 조직 내에서 스스로의 적절한 리더십을 행사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시민운동과 NGO 로 대변되는 시민사회는 이미 참여민주주의 실현과 정치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NGO와 시민운동을 이끌어가는 실무자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시민사회와 NGO 의 성장에 대하여 오랜 기간 민주화 격동기를 거치면서 시민사회의 자율적 참여 확대라는 시민역량의 강화측면으로 이해하는 경향 속에서 시민 사회와 NGO 의 성장에 주도적 역할을 해온 지도자 집단의 보통의 시민이라기보다는 전문사회활동가나 교수, 변호사 등 특정 엘리트집단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리더십을 키우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가. 현재 사회에서 하고 있는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대부분의 리더십 프로그램은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해 지도자의 자질양성 및 지도자와 팀원간의 활발한 의사소통 및 상당부분은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분야별로 다른 리더십을 키우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분야별로 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다른데 같은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각 분야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따라서 향후의 연구과제로는 21세기에 한국에 맞는 특히 시민사회단체에 적합한 리더십의 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른 시민사회 지도자의 임무와 역할을 인식하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교육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며, 이에 따른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연구가 요청된다. Civil society is understood as free individuals' association who are not subordinate by their social position since the enlightenment period in the West, and as the loca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which entrust one's powers to a minority to make up a nation. Together with the above elements of social changes, the specialization of technology which is more an more deepening and the diversification of functions and occupations are making a leader have difficulties in exerting his proper leadership within the organization he belongs to. Today represented with civil movements and NGOs, civil society has already an important position in the realization of participation democracy and the political reform. Thus, the corresponding NGOs and the executives who are leading the civil movements are becoming the focus of people's interest. There is a tendency that civil society and the growth of NGOs are understood as the expansion of voluntary participation of civil society passing through the democratic upheaval of long time in the aspect of the enhancement of civil capacity. With that, a criticism is emerging that the loader group who are playing dominant roles for the growth of both civil society and NGOs are a certain elites group including professors and lawyers rather than the common citizens. Then, what efforts can be given to growing the leadership? What are the leadership programs performed in the society now? According to the investigation in this study, most of the programs currently being performed are of similar aspects. That is, most of the leadership programs are going toward the cultivation of leader's talents and the active communication between the leader and the members for purpose of accomplishing the goal of the organization. Considerable parts of the programs are going similarly. Rare are such programs that are training each different leadership by parts. As leader's aspects required in each part are different, the same programs are also seldomly seen. Then, it is most of all urgent to develop the programs fit to the characteristics of each part. Future studies need to develop such leadership that is fit to Korea in 21st century, especially the civil society groups, to form an adequate environment to recognize the missions and roles of civil society leaders required by the new paradigm, to provide proper education for it, and to carry out continuous and extensive studies subsequent to the above things.

      • 정보인권 침해의 발생과 전개 과정에 관한 연구 : NEIS를 중심으로

        이거현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50783

        본 연구는 현장연구로 2002년 8월 전자정부 구축 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사이에 두고 효율성과 주민편의를 앞세워 강행하려는 교육부와 정보인권 침해를 이유로 이를 저지하려는 전교조가 대립하면서 빚어지는 갈등의 과정을 참여관찰자 입장에서 분석한 것이다.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인권보장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시급하다. 특히 한국사회는 효율성에 바탕을 둔 국가주도의 급속한 정보화로 인하여 인터넷 보급과 같은 정보화의 인프라만 구축되었지 정보인권에 대해서 사각지대라는 사실과, 정보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NEIS의 추진과 관련된 사례 분석을 통하여 정보인권보호를 위한 대안을 찾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하여 교육부와 전교조의 갈등 과정, 시민사회단체의 공동대책위원회 구성과정, 공동대응 과정상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정보인권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담론화 되고 확산되어 가는지를 밝힌다. 또 그 과정에서 전교조가 어떤 역할과 기여를 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각종 문헌과 인터뷰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NEIS와 관련된 인권침해 갈등이 발생한 구조적 배경으로 정치·사회적 배경과 산업적 배경으로 구분하였다. 정치·사회적 배경은 첫째,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적 정권을 거치면서 사회 저변에 내재되어 있는 인권에 대한 의식수준이 낮은데서 기인한 문제이다. 정치권력의 성격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호전되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인권에 대한 관심과 수준이 낮은데 그 원인이 있다. 둘째, 식민지, 전쟁의 경험과 분단, 외세 의존적 국가권력의 영향으로 자생적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물적 토대 없이 조직된 한국의 시민사회는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와 초계급적 이슈에 초점을 맞추며 성장과 분화의 폭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인권운동이 전문화된 한 부문운동으로 자리 잡으며 시민사회의 인권의식이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다. 셋째, 국제사회 인권 논의의 확대로 지구시민사회운동이 대두되었고, 이를 통하여 인류의 연대망을 형성하였다. 그 결과 국제사회는 인권문제를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그 연대망 속에서 한국사회의 인권의식도 함께 성장·발전하였다. 넷째, 한국사회에서의 인권의식은 역사적 사건들과 맞물려 성장해 왔다. 인권을 침해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인권의 범위가 자유권 중심에서 사회권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어 나갔다. 그런 결과 사회적으로도 인권문제에 대한 개념 인식이나 저항이 확대될 수 있었다. 다음은 산업적 배경이다. IT 산업 강국을 꿈꾸며 상업적 동기에 기반 하여 추진된 국민의정부 정보산업 육성 정책은 인권의식의 성장, 시민사회의 성장과 같은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성장 위주의 정책 추진 방식을 답습함으로써 양적 성장은 이루었으나 질적 성장, 즉 인권에 대한 기대에는 크게 못 미치며 갈등을 빚었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들은 전교조가 정보인권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내는 기반이 되었고, 시민사회는 이미 성숙된 인권의식을 바탕으로 정보인권 침해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NEIS 갈등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하였다. 제1단계는 태동기로 NEIS의 개요, 전교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는 정보인권 침해요인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여기에는 NEIS 시행이 가지는 위법성, 정보 집적으로 인한 폐해, 국민 감시기구화 할 잠재적 위험성, 교육의 자주성 침해, 관료들의 철학적 빈곤과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제2단계는 갈등기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이전,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과정, 발족이후 갈등의 전개과정으로 구분하여 일련의 대립과 갈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정보인권 담론이 이슈화되고 정보인권 의식이 사회적으로 확산 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또 인권과 교육을 도외시 한 채 교원단체간의 세 싸움 또는 현상만을 보도하면서 혼란을 부추긴 일부 보수언론의 보도행태, 교육부의 반복된 말 바꾸기, NEIS 추진 과정상의 의혹 등 갈등을 부추긴 변수들도 살펴보았다. 제3단계는 합의기로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합의한 이후의 진행 과정과 정보인권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에 대해서 다루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 사전영향평가 및 독립적 감시기구의 설치 등을 통해 정보인권에 대한 사회적 원칙과 기준 마련을 위한 요구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이와 같은 고찰을 통해 본 연구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NEIS의 추진과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까지 무시한 일방 적 강행은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루었으며, 그런 점에서 갈등을 확대시킨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 반면 전교조와 시민사회단계는 NEIS 정보인권 침해에 대한 저항 과정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성과를 얻었다. 첫째, NEIS를 통한 정보의 집적이 정보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임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여 정보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는 한국사회의 정보인권을 중대하게 진전시켰으며, 정보사회에서 개인정보 자기통제권의 기준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정보인권 문제를 여론화시켜 인권을 배제한 정보화는 추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각인시키고, 그에 따른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정, 독립적 감시기구의 설치, 사전영향평가제도 시행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셋째, NEIS의 시행을 통한 교원의 잡무 증가와 교육활동에 대한 정부의 통제 시도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였다. 전자적 통제와 잠재적 감시기구화 할 위험성이 있는 NEIS의 시행을 저지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학교교육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NEIS 문제는 한국사회 정보인권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또 정보인권의 중요성을 일반국민들에게까지 각인시킨 의미 있는 과정이었으며, 정보인권자체를 보편적인 사회적 기준으로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NEIS에 대한 사회적 논쟁과 갈등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만을 앞세워 인권을 위협하는 어떤 정책과 관행도 이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을 만큼 시민사회의인권의식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NEIS 투쟁은 그동안 소수 정보인권단체와 활동가들에게만 머물러 있던 정보인권에 대한 인식을 대중적으로 확장시킨 중요한 계기이자 사회적 담론으로 확산시키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인터넷 강국이면서 동시에 정보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역설은 한국사회 인권에 대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상징성이 높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저항 과정은 사회에 문제제기를 한 것 이상의 과정을 뛰어넘지 못한 한계가 있다. IT 강국을 앞세워 전자정부의 구현을 통한 각종 개인정보의 무한적 집적이라는 유혹에 빠져있는 정부, 그리고 자본의 속성과도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정보인권이 효율성·편리성 등 여러 목적의 종속변수로 고려되는 인식의 저급함도 극복해야하기 때문이다. NEIS와 관련된 사회적 저항은 근본적으로 '무엇을 얻을까'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였다. 이 운동의 결과를 두고 내부적으로도 분산 시스템이 NEIS와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정보인권운동으로 볼 때 결과보다 과정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성도 분명히 있다. 2002년 말부터 2006년 3월 새로운 시스템에 의한 NEIS 시행까지의 기간은 한국사회에서 정보인권 의식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이다. NEIS 정보인권운동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또 하나의 사건사적 요인을 통하여 인권 상황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경험의 과정을 추가하였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독점적이고 독단적인 정책결정은 국민들의 커다란 저항에 부딪칠 수 있음을 인식하여 정책의 수립 및 시행에 신중을 기하고, 국민들의 참여를 통한 정책결정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는 NEIS반대운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보인권운동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변화를 꾀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다음 단계로의 도약은 정보인권과 관련된 이슈의 질적 변화 뿐만 아니라 정보인권운동 주체와 방식의 질적 변화까지도 동반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is a field study, as a participative observer, concerning the development of the NEIS which created a conflict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Korean Teachers & Educational Worker's Union (KTU). The former created the NEIS for reasons of efficiency and convenience, and the latter protested it because of the possibility of using the information in violation of human rights. In a continually growing information society, there is the possibility of increasing violation of human rights, so society has to make an effort to secure human rights. Especially such a society as Korea needs such efforts since it has emphasized efficiency and rapidly developed as an information-oriented society, and because Korean society has focused on internet service not on information human rights. Thus this study starts from the critical stance that a legal system to protect information human rights should be established as soon as possible. It also researches alternatives to protect information human rights by analysing several cases related to NETS. To achieve the above purpose, this study, through analysing conflicts between the government and KTU, shows the growth of the understanding and consciousness of information human rights, the process of building an association of many civil organizations and the dynamic mutual working process of those organizations. This study also analyzes how KTU functioned and what kind of role it took in that process according to various written materials and other means such as interviews. A summary of this study is the following. First of all, this study divides structural factors that bring about the violation of human rights into social-political factors and industrial factors. Social-political factors are first due to the low level of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as a legacy of the past military dictatorships and authoritarian power. Although it has gradually improved by experiencing relatively better political power, the Korean people have not been so concerned about human rights. Secondly, the activities of Korean civil society were limited by the experiences of Japanese colonialism, the Korean war, division of the nation into North and South, government dependence on the power of foreign countries and authoritarian political power, etc. However, despite this history, many in Korean civil society focused on various issues beyond early issues so that they experienced an expansion of development and diversity in activity in the 1990's. In that period, the human rights movement was also established as a special field and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in civil society also rapidly grew. Thirdly, the world civil society movement expanded the discussion of human rights and built a solidarity network worldwide. As a result, international society accepted human rights as a common issue beyond national borders and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in Korean society also grew with the worldwide solidarity network. Forth,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in Korean society has grown with historical events, so the range of human rights could be extended from civil liberties to social rights. As a result,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and the protesting of abuses could be extended into society. Next are industrial factors. The dream of becoming an advanced nation in the information service industry in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was based on commercial motives so that it could inherently not be reflected in social change such as the growing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in civil society. The government continued the policy centering on growth, as previous governments had. Thus it unavoidably caused conflicts for the lack of satisfying civil society's expectation on qualitative growth in human rights. Those structural factors became the basis upon which KTU could bring information human rights issue into society. Thus civil society, based on a mature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was able to join with KTU in responding to the infringement of information human rights. This study divides the process of conflict into three stages. The first stage is about the beginning period related to the outline of NEIS and the way in which KTU and civil organizations pointed out violations factors of information human rights. This part includes illegal aspects of NETS, abuses through the concentration of information, potential dangers of being a surveillance system, violation of autonomy in education, lack of philosophical thinking of officials and the emphasis on administrative convenience. The second stage is in the conflict period that can be divided into two sections: the periods before and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common task force association. This study also researched the style of reporting of some conservative newspapers that neglected essential points and reported superficial phenomena as though it was a kind of power game between educational organizations. It also studied other factors such as repeated changes of statements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doubts about the process of pushing for the NEIS. The third stage is related to the period after that the government and KTU came to an agreement to build a new system on a legal and institutional basis. This stage also analyzed some demands such as the establishment of a law for protecting personal information, an influence evaluation system before operation and the establishment of an independent oversight institution which can develop social principles and criteria on information human rights. The conclusions of this study are the following. Trying to force implementation of NEIS brought about many social costs because it was arbitrarily forced, neglecting even the advice of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In particular,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Human Resources Development had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is situation. On the other side KTU and civil organizations attained the following positive results through the protest. First is the expansion of social awareness of information human rights which were seriously violated by the concentration of information of NEIS. Thanks to this awareness, information human rights has greatly developed. It was also an opportunity to propose standards for protection of the right to control one's personal information in an information society. Secondly, it achieved public consensus that an information society should not be achieved without human rights. It also prepared the way for establishment of a law to protect personal information, an influence evaluation system, and the establishment of an independent oversight institution. Thirdly, it prevented an increase in teacher's miscellaneous duties and the attempt of the government to control educational activities. They were able to maintain autonomy and self-regulation in education.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is the growth of civil society's consciousness regarding human rights. The anti NEIS movement was an epoch-making event of history that extended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which had been limited to human rights activists, into the public arena. It could also be seen as a symbolic event in the world due to its importance in bringing up a critical change in consciousness concerning human rights. In spite of all those positive sides of the anti NEIS movement, there are still many remaining issues which KTU and civil organizations have to overcome together. They need to go beyond the government and capital which focus on accumulating or commercializing personal information, and also move beyond the low level of consciousness of human rights which values efficiency and convenience more than human rights. The civil protest of the anti NEIS was a matter of choice considering what was right, not about what was achievable. There is a doubt whether the "divided system" (which was jointly agreed upon) is really different from the NEIS system. However, looking from the perspective of the human rights movement, we need to positively emphasize the process more than the result. When establishing policy, the government has to be aware that people may strongly oppose a policy, and therefore must give people an opportunity to take part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On the basis of the results of the anti NEIS movement, the next stage is for civil organizations to seek qualitative changes not only in issues concerning information human rights, but also in the subject and methods of the information human rights movement.

      • 피스보트 글로벌 평화교육에 관한 사례연구 : 지구대학을 중심으로

        김선용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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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서두는 9.11의 충격과 이어지는 아프간,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평화의 이슈’를 국제시민사회의 화두로 등장시켰다. 부시 행정부는 ‘안보적 평화’라는 이름으로 대테러전쟁을 선포함으로 국제사회를 이분화 시켰을 뿐 아니라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테러를 증폭시켰다. 동북아시사 상황 또한 북핵문제로 인한 긴장과 일본정부의 우경화 강세와 더불어 과거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어져가고 있다. 본 연구보고서는 이러한 국가간 분쟁을 출발점으로 평화문제를 접근하기 위하여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평화교육에 주력하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인 ‘피스보트’를 연구대상으로 한 보고서이다. 본 연구보고서는 국가간 충돌에서 빚어진 폭력의 문제를 접근해 가는 과정에 있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국가와 민족개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더불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가지고 글을 전개하였다. 첫째, 국가간 혹은 민족간 발생하는 폭력의 문제는 과연 국가간의 이해부족으로 기인하는 것이며 민족과 국가를 넘어 ‘타자의 문제’를 어떻게 나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둘째, 신자유주의 흐름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고 평화, 인권,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적 이슈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에서의 평화교육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셋째, 현실문제에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교육은 무의미하다. 피스보트가 지향하는 글로벌 평화교육은 과연 현실을 변화시키는 교육인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피스보트가 지향하는 글로벌시민 평화교육을 관찰하였으며 연구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평화교육과 연구에 있어서 쉽게 우를 범하는 것 중 하나는 정치, 종교 혹은 문화차이 등 하나의 기제로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국가간 혹은 지역 내의 갈등은 지구화라는 흐름 속에 훨씬 복잡한 구조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 갈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발생하기보다 오히려 관념화되고 추상화된 전쟁, 평화. 이데올로기 등이 실제의 문제를 외면하도록 만들고 있다. 피스보트 평화교육은 ‘국가간’ 이라는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사고의 지평과 종교, 정치, 사회 등 범주화된 영역을 탈피하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문제 바라보기’를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현장 중심적이고 관계형성에 기초한 평화교육은 국가간의 사회, 문화, 종교, 정치적 차이가 아닌 지구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유사한 문제에 직면하고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동질감을 얻게 되며 그들의 절박한 현실의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해 적극 활동하고 있다. 둘째, 피스보트평화교육은 이슈의 통합과 더불어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경험적이며 실천적인 시민교육이다. 평화이슈가 인권, 환경 등 오늘날의 주요의제들과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사회 및 정치적 구조와 더불어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평화교육의 목표와 내용 및 방법은 다양한 이슈들과의 통합적 관점을 가지고 사회정치적 구조에 대한 이해와 그에 해당하는 접근방법을 찾아야한다. 피스보트 평화교육이 지향하는 시민교육은 평화, 인권, 평등, 환경과 지속가능한 개발의 이슈를 평화라는 확장된 개념 안에서 다양한 이슈들을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실례로 ‘팔레스타인 인권옹호 및 점령반대’ 캠페인을 위해 국제장학생 프로그램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활동가를 배로 초청해 점령지역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인권실태를 알리는 교육과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직접 방문하는 현장학습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올리브 나무가 팔레스타인들의 생활 기반이자 유일한 경제활동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올리브 나무가 뽑혀나가는 것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연대하여 ‘올리브나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또한 평화헌법 개정반대와 무장해제 캠페인 활동과 연계하여 이라크 현지평화활동가들을 배로 초청해 이라크 민간인들의 피해와 자위대의 역할을 필름과 증언을 통해 전달해 줌으로 구체적인 반전교육과 자위대철수의 필요성을 알렸으며 고통 받는 이라크 시미들에게 의약품을 전달하기위한 모금활동도 전개했다. 이처럼 피스보트 평화교육은 인권,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등의 이슈들을 통합적으로 다루면서 지역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하여 문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연대와 협력을 찾아가도록 격려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셋째, 피스보트 평화교육은 여행 참가자들로 하여금 글로벌 시민의식을 가진 사회변화의 행위주체가 되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피스보트 참가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주변 이외에는 일반사회나 정치문제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평범한 일본시민들이다. 그러나 여행이 시작되면서 이들은 TV뉴스나 신문지면(대부분이 보수적인 언론기관을 통해)에서 접했던 정보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와 지역주민을 만나면서 사회에 대한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배우게 된다. 일본 자위대 파병이 이라크 주민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본 정부가 아닌 이라크 주민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면서 파병철회가 주장하고, 생존권을 위해 저항하는 팔레스타인들의 삶의 자리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을 위해 기꺼이 목소리를 높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차대전 중 일본군부가 한국 여성과 시민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알게 되면서 한국 ‘나눔의 집’을 방문하고 일본정부의 북한경제제제조치에 반발하여 북한을 향해 ‘어깨동무’라는 친구의 사인을 보내는 9.17 행사를 주도하고 참여하였다. 피스보트와 함께 한 여행은 우리 모두에게 마음과 생각을 덜어내는 여행이 아니라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 여행이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발견하고 확인한 사람들과의 약속과 결단이 있었기에 평화여행은 계속되어질 것이다. 본 연구보고서의 의의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이 주는 함의에 대한 가능성이며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나라의 시민들이 적극적인 평화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는 점이다.

      • 한국 문화운동의 변화 : 부문운동에서 시민문화운동으로

        강영석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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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운동은 그 사회의 물적조건의 변화와 그 변화에 기인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존재조건의 변화,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가치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유기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국사회는 경제의 양적인 성장과 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라는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지향과 운동방식의 사회운동이 나타났다. 이전의 사회운동을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민중운동, 노동운동 등으로 일컫는다면 새로이 등장한 사회운동의 형태와 성격에 대해서는 시민운동, 신사회운동 등으로 일컬어진다. 본 연구는 문화운동의 변화를 통해 한국 사회운동의 변화를 조망해보려는 바램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내용에서 한국 문화운동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 독립된 사회운동의 영역으로서 문화운동의 생성과 변화를 보기보다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사회운동의 변화라는 배경적 변인들 속에서 한국 문화운동의 변화된 지점들을 찾으려고 했다. 나아가 본 연구를 통하여 정치경제적 환경의 변화 속에서 문화를 둘러싼 담론과 문화운동의 변화를 고찰함으로써 정치경제적 환경과 문화운동 변화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문화운동 변화의 양상을 정치경제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향후 전개될 문화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려 하였다. 논문의 전개에 있어서는 문화담론과 운동 변화의 정치적 배경과 사회운동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87년 이전의 정치적 상황을 권위주의 정권으로 규정하고 이후를 민주주의 이행기라고 규정하여 각 시기에 나타난 정치체계와 사회운동, 문화운동의 성격을 비교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두 시기에 일어난 변화의 내용을 정치, 경제영역과 문화담론, 문화운동영역으로 나누어 부각시킴으로써 실질적인 변화의 요소들을 도출하였다. 마지막으로 한국 문화운동을 대표하는 단체인 민예총과 문화연대의 변화와 정치경제적 요인들을 직접 분석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 이행기인 87년부터 현재까지의 문화운동의 변화양상을 직접적으로 확인해 보았다. 연구를 통하여, 한국의 문화운동은 전체사회운동의 부문운동적 성격과 문화예술과 문예창작자 중심의 운동적 특성이 약화되고,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기반으로 정부정책과 문화산업에 대한 개입과 사회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민문화운동적 성격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물질적 풍요와 소비문화의 확산, 정치적 민주화를 통한 개방성과 사회적 참여공간의 확장이라는 '사회변화'와 집중화된 사회운동적 역량이 사회의 변화 더불어 다양한 가치와 목적으로 분화되어가는 '사회운동영역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도 확인하였다. 구체적인 운동단체분석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변화의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예총의 경우 정권의 성격과 정책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며 조직 차원에서의 변화는 정치적 민주화와 지역분권화의 영향으로 중앙조직의 구심력 약화와 더불어 지역조직의 독립성이 강화되고 있으며 활동에 있어서도 이념적 투쟁활동이 줄어들고 공연 등 문화행사 참여와 정책개입을 통한 문화예술정책의 변화를 꾀하려는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또 지역민예총의 조직적 발전에 힘입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정책개입 활동도 증가추세에 있다. 문화연대의 경우는 민예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영역의 영향보다는 경제영역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초기설립 조건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연대가 설립될 당시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경제위기로 인해 경제논리가 더욱 강화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본운동과 경제중심의 경쟁논리의 확산이라는 경제영역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이 존재했다. 조직에 있어서는 확대된 운동의 영역에 효과적으로 개입하는 방향으로 조직적 효율성이 강화되었으며, 활동기구의 기능과 활동 범위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활동에 있어서는 현실개입의 영역을 확대시켜나가고 있다. 초기 정치영역의 문화정책 개입 중심에서 점차 경제영역의 문화산업 및 대중문화 개입 활동과 대안 문화 창출을 위한 프로그램 연구 등의 생성적 실천중심의 활동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분석을 바탕으로 한국의 문화운동은, 향후 정치/정책 개입활동이 더욱 강화되고 문화산업과 대중문화에 대한 개입활동과 경제 중심 패러다임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활동이 활발히 전개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앞으로의 문화운동에서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광의의 문화에 대한 관점을 강화하고,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 자체에 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반성과 함께 반(反)자본주의, 비(非)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 대한 연구와 실천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필자는 새로운 문화운동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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